용문산 산행기(238회)
이 성 희
아침, 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으로 우산을 들고 나선다. 일기예보가 맞기만을 고대하면서. 상봉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쳐 있다.
용문행 열차에 올라 左右를 돌아보았는데 아는 얼굴이
없다.
잠시 뒤
누가 손짓하는 것 같아 일어서보니 바로 옆줄 좌석에 매화당 식구들이 좌악 마주 앉아 있다.

차를 잘못 타서 한참을 늦어버린 강진소를 포함, 모두 스물네 명이 모였다.

비 그친 뒤 쨍쨍한 햇빛, 투명할 정도로 푸르고 맑은 하늘, 산 그림자는 웅숭깊고, 숲은 한없이 싱그럽다. 언제 비가 왔나 싶게.
절 입구에서는 매자와 명희에게만 주민증 제시를 요구한다. 그래서 모두 와글와글 한 마디씩 던진다. 그게 어디 보통 일이냐고. 행복하다고.
따가운 햇빛은 사정없이 내려 쪼인다. 여름의 한 가운데가 아닌가. 마악 비가 그친 뒤라 발밑이 철벅거린다. 轟音을 내며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더위를 단박에 날려버리고도 남는다. 울창한 수목 아래 물길은 서로를 밀치며 소리치며 흘러내린다. 꼭대기에서부터 내려꽂히니 제 몸의 속도를 어쩌지 못하고 바위 위에서 아우성치며 솟아오른다. 때로 힘차게 또는 부드럽게....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오늘처럼 펄펄 뛰는 계곡은 처음으로 느껴본다.
이윽고 편편한 곳을 골라 좌정한다.

발을 벗고 진소와 같이 물속에 담근다. 무릎까지 잠기게 들어가보니 냉기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전신에 찬 기운이 휘감아들고 팔에 소름이 돋는다.

아주 오래전 얘기지만, 물은 언제나 내게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었다.
1.4 후퇴 때 파주에서 겨우 서울로 피난을 나와 紫霞門 밖의 친척집에 얹혀 지낼 때였다. 그 여름에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던가. 집 앞으로 계곡물이 흙탕이 되어 거칠게 흘러내렸는데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느라 개천가에 나갔다가 그만 실족을 하고 말았다. 몇 백m나 떠내려갔을까. 아랫동네에 사는 아저씨가 나를 건져 업고 돌아왔다고 했다.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이래 물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덕분에 水泳하고는 거리가 千里나 멀어졌다.
절집 앞 유명한 은행나무는 800살이나 먹었는데도 해마다 저리 무성한데 그 앞에서 사람은 개미보다 더 작아지는 것만 같다.
인근에서도 소문난 닭요리집 월남식당에는 송정섭 정정광 부부가 몇 달 전부터 정성들여 빚은 약주가 도착해 있다. 우리 친구들은 복이 많은가보다. 땀흘린 뒤 한 잔씩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을 더하여 맛나게 목을 축인다.
오늘은 김두경 회장의 <복숭아>가 도마에 올랐다. 몇 년도였던가. 그 때는 산행을 제대로 할 때였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그날 정광이의 동동주가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었는지 덥다고 덥석덥석 마시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김두경회장이 정도가 심했다. 숯가마에서 나와 쉬고 있던 여학생(!)들 여럿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으니까.(김회장님 미안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복숭아를 몇 사람에게 보내 모두 잘 받아먹은 기억이 새삼스럽다.
<야, 나는 복숭아 맛도 못 봤어.>누가 이렇게 말하니
<이젠 그 복숭아 밭, 다 갈아엎어서 소용없어.> 하고 김회장이 받아친다.
더운 가슴은 시원해지고 말의 성찬은 식탁 위를 넘나든다.
※오늘 史官 두 분이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가 山行記를 썼습니다. 모두들 식상했겠지만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헤아려주기 바랍니다. 동문 여러분,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고 밝은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남득현 정기봉 김영길 송정섭 정만호 김두경 박효범 박상규 김정차 신해순 강기종
진영애 정영경 박미자 이석영 이명희 박정애 남영애 김양자 임매자 이미화 강진소 정정광 이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