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탐방 일기 1
李 星 姬
내일이면 늦으리---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나중을 기약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취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진행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에 무산을 면할 수 있었다.
6월 20일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터인데 모두 제시간에 모였다. 단장님 이상훈동문이 늦잠 탓에 세수도 못하고 택시타고 간신히 도착, 우리 애를 먹인 것만 빼고.
이륙 후 1시간 40여 분만에 심양에 도착했는데 행여 푸대접이라도 받을까 하던 걱정은 기우였다. 북한출신 화교 청년 王 가이드의 안내로 다음날 일정을 숙지하고 7시간을 달려 송강하 송림빈관에 여장을 풀었다.
21일
1시간의 時差가 있다는데 새벽 3시 조금 넘으니 벌써 바깥이 훠언해진다.
그 이른 시각에 벌써 미화원들이 도로를 청소하는 것이 보인다.
심양에서부터 왕복 1,500km를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그 시간을 빼면 실제 트레킹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중국인들이 만들어놓은 계단을 오르기만 하면 되므로 트레킹이라 말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북파를 먼저 보기로 했으므로 셔틀버스로 山門에 당도해 보니 때마침 端午節 연휴를 맞아 중국인들이 주차장에 하나 가득 모여 있다. 티켓을 구입하러 간 王군이 1시간이나 걸려 왔는데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네요.) 하면서 땀을 흘리며 웃는다. 봉찝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한없이 기다리는데, 밀고 고함치고 새치기하고, 이리 저리 떠밀리고...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장백폭포를 먼저 보기로 한다. 올라가는 길 내내 데크를 깔아놓아 걷기에 편하게 만들어놓았는데 정작 폭포에 다다르니 실망스럽다. 수량이 적어 이름값도 못하는 것 같았다. 가뭄 때문인 듯도 하고.
장백폭포는 16개의 산봉우리가 천지기슭을 따라 병풍모양으로 天地의 三面을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물이 흐르며 1250m까지 흘러내린다. 떨어지 물은 송화강으로 유입되며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폭포 위쪽으로 천지북파로 가는 길이 보인다. 한 참 전에 1박2일 팀이 걸어서 천지까지 가던 길이라고 한다.
부지런히 이동하여 백두산 내 유일한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북파로 이동하기 위해 봉찝차를 탔다. 북쪽이어서 그럴까. 정상부근, 나무는 물론 풀포기조차 제대로 없다.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A,B코스로 나뉘어 들여보내는데 어김없이 줄을 서서 한없이 기다려야 했다. 따가운 햇볕이 내려 쪼인다.
천만다행인 것은 날씨가 청명해서 천지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내내 모두 그 생각만 했을 터이다. 양쪽 코스 모두 중국공안원이 지키고 있어서 일정부분 이상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저 아래 호수를 내려다본다. 사람이 지나치게 많지만 그 곳에 서니 옆사람의 소리는 멀어지고 머언 곳에서부터 태고의 이야기가 들리는듯...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희고 탐스런 구름아래 천지의 수면은 고요히 말이 없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돌고 또 돌아서 엉덩이에 군살이 박히도록 버스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러 왔는가.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말없는 호수, 돌아가 손자들에게 이야기해줄 그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그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 속에 그림을 저장한다.
돌아서 보니 멀리 주차장이 내려다보인다. 아직도 빵차는 끊임없이 딱정벌레처럼 줄지어 달려 올라와 사람들을 토해놓는다. 철책너머에서 잠깐 단체 사진 한 장만 찍자고 경비원에게 아무리 사정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3시가 넘자 그들이 하산할 준비를 한다. 일찍 해가 지기 때문일 것이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찬바람에 뒤틀린 자작나무 군락을 만난다.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게 버틴 흔적이 역력하다. 平地에서 그렇게 반듯하게 위로 솟던 나무줄기가 척박한 환경에서는 키도 작았고 찬바람에 시달린 듯 비틀려 있어 힘겹게 보였는데 그들이 모여 환상적인 숲을 이루었다. 해지고 달이 뜨면 숲의 요정이라도 나올 듯 했다.
큰 천지를 본 직후라 小天地라 이름붙인 곳은 소박하다. 물길이 어디서 들어왔다 어디로 나가는 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수면에 비친 나무그림자 제 모습에 놀란다.
녹연담은 보다 더 고운 색으로 빛났다. 푸른 물빛이 청명하고 위쪽에 폭포는 秀麗하다.
지린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마을 이도백하로 이동한다. 연길을 통해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에 美人松 소나무 길이 아름답게 뻗어 있다.
저녁에 온천을 한다고 했지만 빠지려고 했었는데 생각을 바꿨다. 30여년 만에 현지에서 구입한 수영복을 입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물이 탁했지만 그래도 백두산 근처 온천물이 아닌가. 친구들하고 아이들처럼 물속에서 깔깔거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겠다.
연변자치주는 이전 우리가 북간도라 부르던 곳으로 창투철도가 지나가고 靑山里 抗日戰勝地, 봉오동 항일전승지, 一松亭 등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곳곳에 한글 간판이 보이고는 있으나 중심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황량하고 남루하게 보인다. 朝鮮族人口가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30%밖에 되지 않아 自治州存廢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중국정부의 물타기 작전일 수도 있겠다 싶다.
22일
호텔에서 1시간 30여분 이동하여 서파에 도착했다.
월요일이어서 다행히 한산해 한 시름 놓았다. 주차장에는 한국인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가 대부분이었다. 어제처럼 봉찝차로 朝.中 國境 “5호경계비”로 향한다.
가파른 커브길을 속력을 내어 달리니 세 명이 스크럼을 짜고 앉아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요동친다. 양쪽으로 쏠릴 때마다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40여분 후 도착해 내려서니 온몸이 얼얼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제는 청명하더니 오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비가 내리지 않기만 빌면서 1,442 계단을 오른다.
최고봉은 장군봉이며 북한에 속해 있고 천지의 면적은 9.17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 면적의 1만분의 1이고 깊이는 384m, 초록색 caldera호로 將軍峰을 위시한 火口壁五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걷기가 불편한 사람을 위해 2인 1조의 가마꾼이 있는데 종숙이와 소화가 이를 이용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요금 때문에 가마꾼과 한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9만원이나 냈다고 한다. 백두산 입장료가 5만원씩이나 하니 알만하다.
어제 본 북파보다는 훨씬 시야가 넓게 트여 있다. 두 번 째 천지와의 만남이다. 남들은 열 번을 와도 볼 수없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현지 조선족사진사한테 독사진을 한 장 찍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으나 쉽게 발길이 돌아서지 않았다. 춥고 바람 불어 옷을 껴입는다. 북파보다는 푸르고 목초지가 많아 제주의 목장을 연상케 했다. 주변에 자디잔 꽃들도 눈에 뜨이고 만병초도 보였다. 머언 봉우리에 눈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빗방울이 한두 개 떨어졌다.
梯子河-제자는 사다리라는 뜻으로 지각변동으로 인해 지면이 갈라져 형성된 지형으로 지하에 깊은 강이 흐른다. 계곡이 깊어 보이진 않고 소리만 들렸다.
金剛大峽谷-천지가 용암을 분출할 때 만들어진 V자 형태의 협곡으로 기묘한 형태의 송곳바위와 천길 낭떠러지 사이로 에메랄드빛 계곡수가 흐르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데크를 깔아 놓았다. 산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숲 사이에서 애기 다람쥐 두어 마리 만났다. 새우깡은 싫다 하고 콩만 받아먹는다. 한 알씩 오물거리는데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가 없어서 <옛다 집에 가서 먹어라>하고 한웅큼 던져주고 떠났다.
단동으로 이동 중에 천둥번개를 만났다. 하늘이 가까운 탓인가 벼락소리에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번개는 하늘을 여러 번 갈라 놓았다. 폭우가 쏟아졌다. 우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다.
23일
3시간 30분 걸려 단동으로 이동했다. 남파입장이 불가해서 대신 압록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쾌속선도 있었으나 우리들은 유람선을 택했다. 사실 이런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가 이동함에 따라 북한쪽 강변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볼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드문 드문 민간인과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을 뿐, 그래도 종숙이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어릴 때 멱을 감고 놀았다고 말씀하시며 그리워하던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가까울 줄 알았으면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강물이라도 적셔보게 했을 일>이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신의주는 바로 손에 잡힐 듯 했으므로.
강 가운데 위화도가 있다. 조선 개국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압록강의 下中島로 토사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토지가 비옥하여 옥수수, 조, 콩, 수수 등을 재배한다. 압록강은 백두산 2,500m에서 발원하여 신의주와 단동사이를 흘러 西朝鮮灣으로 흘러 나간다.
역사의 단초를 품에 안고 섬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단동 쪽에는 강변에 수영장이 만들어져있어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며 첨벙거리고 있다. 건너편 북한 쪽 사람들이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갈매기 서너 마리 양쪽 江岸을 자유로이 넘나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