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기다리며>
이른 새벽에 깼다. Bach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5번, 2번을 라디오방송 음악으로 감상했다.
연주자의 연주 실력이 상당하다. 남성인 줄 알았다.
명품가방을 소개하는 모델로도 활동을 한다는데, 미모와 음악재능까지 가졌다.
진행자는 그녀를 손꼽힐 여류연주자로 내다본다고 했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몹시 춥다. 낙수통의 물이 얼었다.
살얼음이 아닌 제대로 된 첫얼음이다.
날이 밝으려면 시간 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추워지니 다급함에 겨울용 비단 솜이불을 손질하기로 맘먹었다.
바느질품이다.
노란 국화색 공단에 진분홍 깃을 넣은 겉싸개를 앞면에 붙이는 일이 첫 순서다.
나머지 전체를 감싸는 호청이 분홍색이니 완성되면 그 화려함이 꽃잠자는 신혼의 이부자리가 아닌가?
여기에 나비촛대까지 있게 되면?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이불 바느질용으로 굵은 바늘과 질긴 무명실이 따로 있다.
나의 외조모의 유품인 가는 대나무 실패와 그 분이 손수 물레를 자아 만드신 실꾸리를 만지며 오늘은 기필코 이 실을 써 보리라 마음먹는다.
더딘 실 꿰기, 두툼한 솜까지 찌르고 다시 빼내야 하는 바늘 잡이는 과연 쉽지 않다.
익숙지 않은 솜씨라서 오른쪽 검지가 찔렸다.
한 시간 걸려 화사한 앞면만 붙여 놓았다.
오후에 퇴근하여 호청으로 전체를 싸고 완성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다 되면 한 번은 건넌방 아궁이에 불 땐 후 요 깔고 솜이불 덮고 자며 낭만이 있는 옛 맛을 즐겨보리라.
그러나 이건 방안에서만 한정된 호사다.
그렇게 하려면 방 밖에선 내가 머슴이고 내가 하녀다.
컴컴한 헛간의 해묵은 무쇠 솥에 물 길어다 채우는 일, 낡은 아궁이에 곰 잡는 연기 맡으며 눈물 찔끔거리며 불 때기,
부지깽이로 장작 쑤셔 넣는 마무리까지. 상머슴이어야 한다.
불 때면서 잡생각도 나겠지. ‘아마츄어는 불을 쬔다, 그러나 프로는 불을 피운다’ 혹은 지나간 날의 ‘캠프파이어’ 등등.
입동이 지나면 산골 마을은 해넘이가 빠르다.
밤이 일찍 찾아오니 정말 긴 밤이다.
동지까지 계속 밤은 길어지고 낮은 노루 꼬리만 하다던가.
동지를 기다린다. 팥죽도 먹고 낮도 길어지겠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