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CEO칼럼 - 동계 올림픽의 교훈 2014-03-19
동계 올림픽의 주 종목인 스키나 스케이팅은 우리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지만 서양에서는 고급 스포츠로 일상화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쇼트트랙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최근 김연아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눈을 뜨게 됐다. 벤쿠버에서는 올림픽의 꽃인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국민들의 자부심을 한껏 북돋았다. 또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는 다양한 종목에 참가함으로써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반열에 올랐다. 스포츠는 그 나라의 문화수준과 삶의 질의 척도가 되는 바 우리는 경제 성장과 아울러 사회·문화·스포츠까지 다변화 함으로써 국민들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소치에서 김연아의 연기는 가볍고 부드러우며 우아한 아름다움의 연속이었으나 아쉬운 결과에 모두가 의아해 했다. 금보다 더 값진 은메달이 주어졌고 금이 간절한 다른 선수에게 양보했다는 의미의 그 여유에 국민들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언제나 아디오스 연아를 기억할 것이며 그녀의 아름다운 퇴장과 빙판에 남긴 궤적은 그림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다. 23년 생애 중 17년을 짧은 영광의 순간을 위해 피겨스케이팅에 몰입하면서 긴 고통과 부상을 달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이제는 인간 김연아로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알차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훌륭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스케이팅은 물론 음악·율동·의상 등 여러 분야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종합예술로서의 동반 상승 효과가 있는 종목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외신방송해설자는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꽃잎에 사뿐히 앉는 나비를 보았고 천사의 날갯짓을 연상하는데 우리는 기술의 가산점과 점프의 난이도만을 따지며 점수화하여 평가하는 잣대가 못내 아쉽다. 경쟁과 경제성장으로 모든 일상생활이 계량화되고, 수치에 따라 결과만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이제는 과정을 즐기는 성숙하고 여유로운 문화민족이 되어야겠다.
그래도 한국 겨울왕국의 일가를 이룬 것은 다름아닌 쇼트트랙이다. 8년 전 안현수를 비롯한 선수들의 선전으로 쇼트트랙 강국으로 위상을 굳혔으나 이번에는 타국의 집중공세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 중심에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화제가 되었고 그의 빈자리가 크게 부각되면서 빙상계의 치부가 노출돼 국민들의 입맛을 씁쓸하게 하였다.
금번 동계 올림픽 성적은 예상을 밑돌았지만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이르다. 아픔을 반추하면서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미래를 열어줄 선수를 발굴·육성해야겠다. 박승희 선수가 2번이나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동메달을 딴 것은 감동이었다. 더구나 3000m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 반바퀴를 두고 이룬 역전 우승은 노 메달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죽어 지내던 남자 빙속 선수들의 팀추월에서 얻은 은메달과 더불어 한국인의 끈기와 협동정신의 완결판을 보여줌으로서 세상사에 힘들어 하는 국민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끈을 놓아 주었다.
이번에 국민들의 눈길을 끈 종목은 컬링이었다. 생소하고 낯설던 경기가 참가 선수들의 젊고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괜찮아요” “잘했어요”라며 서로 격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국민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모굴스키·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스키점프 등은 새롭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종목이다. 비록 입상을 못했지만 앞날을 위해 외롭게 뛰어줄 선수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노르웨이의 스키나 네덜란드의 스케이트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 즐기는 일상활동으로 우리도 쉽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연습장부족으로 도로 위에서 자동차에 매달려 연습하는 선수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환경에서는 몸을 혹사하게 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선수들에게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해서 격려하고, 목표 의식을 갖는데 밑거름이 되며, 미래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고려하는 등 안정화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경기를 접으면서 아쉬운 점은 인터넷 악플이었다. 국민 어느 누가 아쉽지 않겠습니까만 부당한 결과에도 승복하고 참는 성숙한 자세가 아쉽다.
<울산시티병원장 조현오>
지난 동계 올림픽에서 보여 주었던 현대 한국인들의 내면의 멋을 섬세하게 캣치하고 표현해 준 조현오 동문의 글도 훌륭하고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