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9월 초 이맘때 추석 전에 폭염과 태풍으로 어수선했던 여름을 지나서 뒤늦게 고즈넉한 산사로 휴가를 다녀왔다.
지리산 자락으로 한참 들어가는 전남 구례의 작고 호젓한 곳인데 주지스님 포함해서 모두 6명이 서로 다독이며 살고 있었다.
아침밥은 5시 반에 먹으니 낮 시간이 너무 길어서 법당에서 참배를 하고도 무료한 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모든 스케줄을 다 놓아버리고 전화도 안 받고, 텔레비전이 있지만 뉴스 외엔, 좋아하던 드라마도 안 보면서 10일간 버텼다.
그러자니 긴 하루를 보내는 방법으로,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만에 다니는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보는 일을 하며 소일할 수밖에...
버스를 타고 피아골, 연곡사, 하동 쌍계사, 대비암, 칠불사를 하루 한 곳씩 다녀왔다. 버스 시간 때문에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하루 한 곳 이상은 불가능했다.
쌍계사는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위치한 곳인데 화개에서 만난 파출소장 이름이 조영남이라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 소장님 말이 전국 경찰 중에 조영남이 4 명인데, 자신이 화개 파출소장인 게 스스로도 신기하단다. 화개 버스터미널 바로 옆 화개장터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전남 구례군이다. 여기는 영호남 사람이 어울려 지역감정 없이 지낸다.
구례 버스터미널에서 어느 날 화장실에 들렀는데 문 안에 이런 글이 써 붙여 있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간다."
불교 경전 법구경의 한 구절인데 순간 가슴에 콱 와 닿았다.
구례에만 화엄사 천은사 사성암 등 아주 많은 사찰이 있어 불교적 심성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구절은 불교에서 강조하는 "다 버리고 살라."는 의미다.
버려야 더 좋은 것을 얻는다. 나라는 존재를 고집하는 아집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갖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라는 의미 같다.
서울 생활의 스트레스를 다 버리고자 간 곳인데 그 답을 얻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다 버리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물질적인 욕심은 어느 정도 버렸으나, 마음 속에 아직 번뇌 망상이 많으니 어찌 다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버리면서 살도록 노력은 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