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신해순 교수의 고증에 의하면 우리들의 첫번 산행 모임이 1994년 4월에 졸업 30주년 기념 일환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니, 어느덧 우리들의 산행모임이 오늘로 200회째가 된다. 오늘로 꼭 18년이 되는거다.
나이 50이 채 않되었을때, 한창 열심히들 일을 하고 있을 때 시작했던 산행 모임이 어느덧 70을 얼마 앞에 두고 대부분이 은퇴를 하여 지내고 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서린다. 그동안 이 산행모임을 위하여 처음에 위광우가, 그 뒤를 주환중이 그리고 그 뒤를 정태영, 심항섭, 권영직, 이상훈, 박효범이 회장을 맡아오다가 장용웅 대에 이르고 있으니 회장만도 무려 8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이 산행기도 2001년 6월 파주 감악산 산행시에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이어져 왔으니 12년이나 되어 간다. 이 산행기를 써 온 필진도 이재상, 이성희를 비롯, 이향숙, 권영직, 김영길, 노준용, 이석영, 박정애, 신덕애에 본인까지 포함하니 10명에 이르른다. 거기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고 또 그 외에도 음으로 양으로 성원해 준 친구들까지, 그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쳐간다.
그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려야 할 수서역을 지나쳤고, 또 급히 돌아와 수서역 6번 출구로 나가보니 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버스가 보이질 않는다. 2, 3분도 기다리지 않고 벌써 떠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며, 저쪽을 바라다 보니 거기에 버스가 서 있었다.
버스 안에는 오래간만에 보이는 반가운 얼굴들인 이정희, 이후영, 방유정, 김윤경을 비롯하여 박미자, 정기봉, 권영직, 변병관, 황정환, 송인식, 강기종, 정숙자, 정영경, 김양자, 박정애, 남영애, 이향숙, 유미희, 전행선의 얼굴이 보이고 얼마 후에는 제천 멀리에서 신덕애가 합류한다. 8시 20분이다.
합정동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영, 황양순, 이성희, 이재상, 민일홍, 우무일, 김정차, 남득현, 신해순을 태우고 김포 고촌에서 박효범, 이명원까지 태우니 오늘 버스를 탄 멤버는 여자 동문 17에 남자 동문 15이다.
길이 엄청 밀린다. 날씨 좋겠다, 꽃 피겠다, 신록의 파릇파릇한 아름다움이 눈을 시원하게 해 주니 모두들 길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다.
박정애가 준비한 김밥 먹고, 박미자가 주는 오렌지 깎아 먹으며 느긋하게 가는 길이지만, 그래도 너무 밀린다. 서울 출발한지 거의 4시간이나 걸린다. 벌써 12시가 너머가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 일 때문에 참석 못한 장용웅 회장 대신에 오늘 산행을 관장하는 권영직의 긴급 제안으로 백련사부터 시작해서 미꾸지로 내려가려던 산행계획을 바꾸어 미꾸지로부터 꺼꾸로 올라 진달래를 구경하고는 다시 그 곳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밟기로 하였다.
12시 반경부터 강화도 서북쪽 미꾸지에서 시작하여 산행을 한다. 꼭 5년전인 2007년 4월에 이 곳으로 왔을 때도 이 곳으로부터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오늘 백련사로부터 오르지 않았 다고 해서 꺼꾸로 산행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앞으로 5년 후에 이 곳으로 또 올 때에도 오늘처럼 차가 밀리려나?
차가 밀리는 걸 보았을 때보다는 산에서 느끼는 인파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어느 산을 가더라도 가는 인파는 많아도 산은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껴 앉기 때문인 것 같다.
얼추 정상을 다 올랐다 싶었는데, 진짜 정상은 저쪽으로 보이는 2.7킬로 떨어진 곳이고, 고인돌 군락지는 그 중간 중간에 있고, 진달래 군락지는 그 정상 부근이다.
더 갈 것인가? 이 곳에서 간식하며 좀 쉬다가 내려갈 것인가? 모두 시간도 시간이니 후자를 택하잔다. 간식 먹고 기념 사진 찍는다.
하산하여 은성 횟집에 오니 2시 반. 영, 써비스가 엉망이다. 오죽하면 우리 전용 노 기사의 말이 이 곳 강화도에서 가장 써비스가 나쁜 식당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우린 맛있게 생선 회며 매운 탕 잘 먹고 나와서 4시 좀 너머서 서울로 올라 온다.
돌아오는 길도 쌩쌩 빠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영원한 재주 꾼 이재상이의 익살스러운 유모어를 즐겨 들으며 200회 산행을 마감한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