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은희에 대해서 전 담임으로부터 걱정스러운 말을 들었다 많이 보살펴야 되는 아이며 친구들과의 적응이 쉽지 않은 아이라고.
은희는 학교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하는 아이다 머리는 빗지 않고 다 산 노인네 같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일본식 단발머리로 까무스름한 얼굴에 체구도 제일 작다. 앞머리가 눈썹을 덮어서 어느 날 그 아이의 허락을 받고 앞머리만 잘라 주었다. 복도로 살짝 나가서 했기 때문에 교실에서 궁금해 하던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게 더 재미있었다.
선생님이 미용사냐며 웃고 은희를 쳐다보고 날 한 번 쳐다보고.
은희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알콜 중독인 아버지, 어벙한 6학년 오빠와 산다. 엄만 철없이 남편 친구와 바람이 나서 새 남편 따라 멀리 떠나 버린 여자다. 유아기에 억지로 데리고 가서 계부 밑에서 키우다가 다섯 살 무렵 은희 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근처 방앗간으로 데리고 와 평상마루에 버리고 갔다 한다. 할머니가 소문을 들으면 데려다 키우리라 짐작한거다. 생모와의 험한 관계 속에서 몇 번의 거친 고비를 넘긴 은희의 성품은 난폭과 심술, 그리고 멍청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과 집중하지 못하는 열등생의 복합요인을 다 가지고 있다.
한글은 겨우 읽는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힘은 없다. 어휘력도 매우 빈약하다. 수의 자리 값도 모른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단문 형 질문을 자주 한다.
“이거 왜 여기다 놨어요 ?”. “이거 뭐예요?“
다른 아이들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단속하며 가르치는 예법이나 친구 대하는 심리기술에 상식이 없고 무식하다.
아버지는 낙오자 같은 모습으로 살고 할머니는 아들의 불행에 심화병이 난 환자다. 은희를 다정하게 사랑으로 보살펴 준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천덕구니 은희를 볼 때 내 가슴엔 눈물방울이 돋는다.
숙제는 단골로 안 해와 혼나기 일쑤, 준비물도 안 가져와, 시험성적은 최하위, 몸에선 냄새나, 만날 같은 옷만 입어.... 급우들에게 무시 당하였을테고 오나가나 구박덩이였었을 은희. 난 결심을 했었다. 내가 있는 한 은희를 일 년 간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점심 먹는 시간에 식당에서 담임 옆에 앉는 특권을 공평하게 주려고 맨 앞에 섰던 아이는 다음 날 맨 뒤로 가서 하루씩 차례로 이동 해 올라 와 앉는다. 그 것도 마주 보는 자리와 옆 자리의 선호도가 다르다. 마주보는 걸 더 좋아한다. 나의 보살핌에 바짝 기대는 은희가 제 차례는 대각선 자리인데 마주보는 내 앞으로 제 식반을 밀어 놓고 고집하여서 다른 여자애가 잔뜩 부어 있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웃어주었더니 일은 부드럽게 해결되었다.
은희가 교실에 들어 올 때면 만면 미소로 은희만 쳐다보며 웃어주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너는 참 사랑스러워’ 하는 메시지를 눈에 가득히 담아서. 그 아이는 스스럼없이 내 자리에서만 빙빙 돈다.
학교도서관 출입 경험을 갖게 하려고 내가 읽을 만한 책 두 권을 빌려오라 했더니 <장정일 독서일기1>과 <봄바람> -박상률 성장소설-을 가져왔다. 은희가 선택해 준 책, 우연이지만 기쁜 맘으로 틈틈이 읽는다. 은희는 반납도 하고 또 빌려오겠다는 표정으로 책을 만지작거리며 “다 읽었어요?” 묻는다.
16명 아이들이 대체로 일기와 1~16급까지 있는 받아쓰기 숙제를 잘 해 오는 편이나 은희는 3월내내 안 해왔다. 어느 날 아침에 은희를 번쩍 안아 앞뒤로 흔들어주며 “숙제 좀 해오면 좋겠어” 그건 은희가 급우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다음 날부터 은희가 날 무척 행복하게 해 주었다. 힘주어 눌러 쓴 글씨엔 고집스런 강한 성격이 나타나 있다. ㅇ을 크고 당당하게 썼고 받침이 두 개 있을 때 왼쪽받침에 오른쪽 받침이 절대 밀리지 않고 고르게 크게 쓴다. 물론 친구들 모르게 왕 막대사탕 한 개를 주며 다른 애들에겐 비밀이라 약속했고. 약속을 잘 지킨 멋진 아이라고 칭찬을 쏟아 부으며 다음 날은 머리를 빗겨주었다. 약속대로 머리를 감고 왔기 때문이다. 등을 돌리고 머리를 맡긴 은희와 나 사이에 봄빛깔 훈풍이 물결친다. 비록 고무 밴드로 묶은 양 갈래 머리지만 새로운 모습의 은희를 보며 난 손뼉을 쳐 주었고 친구들도 예쁘다고 웃어주었다. 요즘은 제 스스로 머리를 묶고 온다. 서툰 솜씨라 삐삐 같지만 누군가 준 리본방울로 멋도 내고 온다.
전에는 같은 학급 여자 어린이 송미경과 늘 싸우고 소리 지르고 울고 했다던 은희다. 송미경이 손가락을 다쳐서 치료차 조퇴 한 날 이웃 덕산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단체 선물을 보내왔었다. 구운 계란 한 개와 야쿠르트 한 병씩 봉지에 포장하여서. 미경이가 다음 날 자랑했다. 어제 은희가 구운 계란 한 개를 자기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그러면서 둘이 단짝사이로 지내기로 약속한 사이라고. 미경이것은 내가 잘 보관하였다 줄 건데....
제 것을 안 먹고 미경에게 갖다 준 은희가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라 여겨졌다. 은희는 이제 열 살이다.
은희 때문에 작은 감동이 있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