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시산제
이 성 희
추위가 가시지 않아 제법 쌀쌀한 아침. 원터골 정자에 동문들이 모였습니다. 일부는 시산제 준비 관계로 관현사 쪽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산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추위를 덜 느끼려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죠. 우리들 몇은 옥녀봉쪽으로 또 나머지는 매봉 쪽으로 오릅니다. 옥녀봉 주변은 만원버스처럼 붐비고 우리 일행은 한쪽 구석에 몰려서서 민일홍동문의 앉은뱅이 막걸리를 단숨에 비우고 일어섭니다. 많은 사람들의 등산화 무게에 짓눌린 옥녀의 등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윽고 다시 헬기장 쪽으로 가 보니 다른 친구들은 이미 그 곳에 함께 모여 있군요. 우리 모두 다 함께 시산제 장소로 향합니다.
메마른 날씨 탓에 흙먼지가 일고 있었지만 東에도 西에도 닿지 않고 허공을 맴도는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구름인가 안개인가. 그 사이 사이로 보약보다 훨씬 더 좋은 웃음소리가 골골이 퍼져 나갑니다.
흐르다 말고 얼어붙은 계곡의 물은 아직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희고 작은 빙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느 새 시산제 장소에 다다릅니다.
부지런히 준비한 제물을 진설하고 조촐한 제상을 마련합니다.
특히 올해는 예년에 없던 산악인 선서 순서를 집어넣어 한층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큼직한 돼지머리 앞에 엎드린 동문들의 머리 위로 축문을 읽는 이재상동문의 목소리가 유장하게 울려퍼집니다. 아주 잘 어울리네요.
(흑룡의 해 임진년에도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며 천지간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산인으로서 산을 닮은 좋은 사람들이 되겠다)는 축문은 산신령님의 미소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祭를 마치고 음복을 하는데 땀이 식으면서 寒氣가 엄습합니다.
모두들 서둘러 뒷마무리를 하고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山行記를 처음 올리기 시작한 것은 파주의 감악산행 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곳은 나의 출생지여서 언제나 산기슭의 붉은 진달래꽃을 고향생각으로 제일 먼저 떠올리곤 했습니다. 1.4 후퇴 이후 한 번도 발걸음하지 못하고 50여년 만에 그 앞에 섰을 때의 감회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요. 봄은 아니었으나 수목은 녹색으로 푸르렀고 산행이 끝날 때 쯤 빗줄기가 후두득거리기 시작했으며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비안개에 싸인 감악을 뒤로 하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저리던지요.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를 두고 떠나오는 것 같은 서러운 유년의 기억이 가슴을 쳤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시산제에 참석하는 인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한데, 작아진 몸피사이로 찬 바람이 파고 드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만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아 더욱 그렇습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겠지요.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동문 여러분 내내 강건하시기 빕니다.
참석자
박효범 변병관 이재상 박상규 정기봉 김윤종 장용웅 김영길 김상건 이명원 민일홍 우무일 남득현 심항섭 박태근 신해순 한동건 임승빈 황정환 주환중 김광현
김양자 서경석 정영숙 남영애 유미희 이향숙 박미자 정숙자 박정애 이성희
시산제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 박미자님을 위시해서 맛며느님 출신들 수고 많았고, 배달의기수 쌩큐, 맑은술 원구, 회장단들 모두 고마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