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에 다녀와서(193회)
이 성 희
首都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冠岳山(629m)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화덕을 가진 <불기운의 산>으로 전해집니다. 흥선대원군이 景福宮을 重建할 때 돌로 만든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양쪽에 배치하였고 관악산에 우물을 파서 안에 구리로 만든 龍을 넣음으로써 火氣를 방지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오늘은 산이 영 生氣가 없어 보입니다.
물을 품지 못하는 토양 때문일까요? 바싹 마른 골에는 먼지바람만 날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 아래 머리가 한없이 무거워 보입니다.
여름 내내 우리를 놀라게 했던 물폭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군요.
하기야 모든 유무형의 형상들은 그 순간이 지나면 흔적은 차츰 사라져가고 뇌의 저 뒤편, 기억의 창고에 쌓여가게 마련이지요.
한창 때의 빛깔을 잃어버린 채, 나뭇가지와 잎새들은 볼품없이 여위어가며 미처 새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군요. 때늦은 老炎의 열기만 목덜미에 후끈거립니다.
山行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도 가을이니까 벌써1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참으로 빠르지요.
심한 병치레 이후 운동 삼아 시작한 일이 어느 새 그렇게 되었나 싶군요.
그 사이에 너무 힘이 들었거나, 또는 아주 좋았거나 인상 깊었던 산행의 추억을 적지아니 만들어놓았습니다.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합니다. 남이 들으면 별 볼일 없겠으나 내게는 참으로 보석같아서 그것들을 구슬처럼 꿰어놓고 가끔씩 꺼내어 햇빛에 비추어볼 작정입니다.
先驗이 일천하여 남들처럼 洋行의 즐거움은 별로 느낄 기회가 적었지만 이 땅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天幸이라 생각합니다.
여나믄 살 먹어보이는 사내 아이가 단단히 준비된 복장으로 장갑 낀 양손에 스틱까지 검어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근처에 있던 어른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흔한 광경은 아니니까요. 어떤 아줌마가 그 애의 등 뒤에 대고 말합니다.< 너 아주 멋지구나.>하고.
인터넷이나 게임에 몰두하는 애들만 보아 오다가 그런 모습을 만나니 아주 신선한 느낌입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람들에 치어 별로 유쾌하지 못했는데 그런 기분까지도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예정된 도착지 마당바위엔 네 명만 있었고 나머지는 조금 아래 풀밭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한참씩 기다려야 할 판이니 구태여 마당바위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山은 피로해보였지만 둘러앉은 친구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짱짱합니다.
그 옛날 <료마에>타입의 교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경기,숙명 아이들의 몸뻬(!)바지도 비교대상에 오릅니다. 교복 때문에 여학생들의 미모(!)가 평가절하됐다는 이야기지요. 참 인심좋은 친구들이군요.
잠시 둘러앉아 쉬는 사이 비오듯하던 땀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나른한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을인가요? 한잔의 막걸리, 안주, 또 따뜻한 커피, 늦게 왔다고 열심히 권하며 챙겨줍니다.
오래 전에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빈 둥지를 지키기 십 수년, 개그프로그램도 즐기지 않아 웃을 일은 자꾸만 줄어드는데 이렇게 가끔 벗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허허로운 웃음의 보약을 받아갑니다.
오랜만에 유쾌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나이에도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동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진심으로 그 친구의 앞날에 편안함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축하하며 박효범회장의 건배사를 외쳐봅니다.
마당발! (마주 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
참석자 명단
강기종 박효범 정기봉 김두경 우무일 송인식 이명원 장용웅 남득현 김상건 이재상 신해순 변병관 전행선 남영애 박정애 이석영 이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