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伏을 하루 앞둔 7월 23일 오전 9시 서울사대부고16회 동기생 33명이 경기도 양평군 중문산으로 산행을 떠난다.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신 분들과 같은 숫자다. 버스 안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반가운 인사로 시끌시끌하다. 제로쿨 투어 관광버스가 수서역에서 떠난 건 9시 20분이 지난 후이다. 강기종이 자기 잘못이 아닌 이유로 조금 늦었기 때문이다.
박효범 회장이 마이크를 잡아 서두 인사와 이 것 저 것 설명을 하고 박미자, 박정애는 은박지에 싼 김밥과 물 한 병씩, 귤과 커피까지 나누어 준다. 덩치 큰 정기봉은 회비를 모으느라 좁은 골목을 오가며 수고하고. 알뜰한 살림꾼들이 있어서 우리들은 편안하게 대접만 받는다. 이 여행을 위해서 열흘 전 쯤 박효범 권영직 남득현 송정섭 등이 사전답사를 했다고 한다. 그 무렵엔 긴 장마로 인하여 계곡 안이 물 천지였을 터인데.....
박미자는 여자들이 많이 참석하도록 철저히 물밑 작업을 한 공로자다. 그래서 십 팔 명이나 참석했으니. 김풍자의 마드렌 케잌 선물이 작은 투명상자에 담겨서 모두에게 베풀어지고.
차는 팔당 대교 앞 에서만 거북이였고 박 효범은 이 때 자기만의 해서체 메모지를 보아가며 더위를 자기 이야기로 물리치라 하며 말하다 중간 중간에 자기가 먼저 웃는다.
“ 혹시 팽귄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아시나요?”
“ ................” -냉동고입니다- “하하하하하하”
“ 그렇다면 팽귄이 다니는 대학은?”
“ ..............” -빙하시대입니다- “아하하하하하”
그 후엔 도착지까지 순조로웠다. 11시 20분 산행실력에 따라 A, B, C로 나누어 중원산을 향해 오른다.한 여름인데 누가 그리 열을 내어 산 정상에 까지 오르려 할까. 가도 고만 못 가도 고만 넉넉한 마음들이 되어 숲길을 천천히 걷는다. 해는 구름 속에 있어 주어서 여자들에게는 그 또한 행운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힘차게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마음은 물고기가 되어 맑은 물속을 헤엄쳐 다닌다. 조금 더 들어가니 중원폭포. 폭포 앞 나무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물줄기를 바라보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ABC들.
쏴아~철~철~철 거대 물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씻어주고 마음속의 잡다한 찌꺼기를 날려 버리게 한다.
길은 약30도 경사졌고 울퉁불퉁 굵고 모가 난 근육질 돌들로 덮여 있다. 이런 산길을 오르는 건 쉽지가 않다.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다. 그러나 어찌 모든 게 다 좋으랴.
목표지점인 싸리재를
못 가서 B선두주자들( 강인자 권영직 김두경 김풍자 남득현 박찬홍 박효범 우무일 유정순 송인식 이재상 심항섭 정기봉 ) 계곡물에 발 담그고 쉬는
동안 남득현은 손수 통밀로 만든 빵 한 덩어리를 보자기에 싸와 빵 칼로 썰고 버터를 발라 한 사람 한 사람 나누어 준다.
조금 후 A주자들이 예약된 점심시간에 늦을까 되돌아 와 함께 발 담그기 잔치에 참여한다. 송정섭은 시종 싱글벙글 자기가 사는 마을에 온 동창들이 좋아서 죽겠나보다. 자기가 텃밭에서 가꾼 싱싱한 방울토마토를 한 보따리 꺼내어 돌린다.
사진 쟁이 심항섭은 초록이끼로 덮인 바위 사이에 거미가 지어 놓은 집을 발견. 거기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아름다워 미끄러운 돌 위에서 곡예를 하며 그 사진을 찍었다. 바위에 어리는 물그림자와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거미실에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는 조화로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유정순이 인도네시아산 생강 캬라멜을 두 알씩 나누어 주며 “반드시 빨아 먹어야 돼요” 안 그러면 이 사이에 끼어 이빨이 고생 한다고.
발이 시려워 질 즈음 특A주자 (강기종 이성희 장용웅)들이 내려오는 모습이 윗길에 보이고 큰 소리로 밥 먹으러 가잔다. 오후 2시를 좀 더 지난 시간이다. 송정섭*정정광의 오랜 단골이며 그 지역에서 가장 입소문이 난 월남식당으로 안내한다.
C모듬은 벌써 와서 웃고 있다.(박상규 이종건 주환중 김성은 김양자 남영애 박미자 박부강 박정애 백창숙 심춘자 유미희 이현주 이향숙 진영애)
외갓집에 온 듯 편히 앉아 푸짐하게 나오는 복날 별식 ‘토종닭백숙’을 맛나게 먹는다.정광의 숙련된 솜씨 누룩 막걸리를 동이 째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에 퍼 주니 남자들은 좋겠다. 고마운 인사와 정이 묻어나는 눈길로 송정섭*정정광을 작별한다.
아름다운 서울로 차는 다시 돌아가는 길. 느슨한 이야기와 초면에는 못하는 Y담도 듣고 배낭 속에 있던 최고로 맛있는 간식을 쪼개서 나누어 먹으며 줄곧 웃다보니 다 왔다.
아! 재미있는 하루.
* 이 여행에 참석하려고 짐까지 싸 놓았다가 갑자기 생긴 일 때문에 못 참석한 친구들, 또 몸이 불편해져서 못 온 친구들, 많이 아파서 병상에 있는 친구들 속히 쾌차하시고 다음 기회엔 꼭 함께 가요.
200회 산행기가 몇달 앞으로 가까워오는 즈음, 참신한 사관의 참여가 더욱 반갑습니다.
앞으로 더욱 더 알차고 즐거운 산행, 그리고 추억어린 후일담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