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책속의 어느 한 분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시었습니다. 아주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요.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을 입고 계시었습니다. 잘 정돈된 자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저 기쁘고 또 기뻤습니다. 거기에 있는 나무들과 멀리 보이는 산들의 허리에는 샴페인 색의 구름들이 명랑하게 떠 있었습니다. 금빛 솜털과도 같았습니다.
나의 걸음은 차라리 날아 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신발을 신어본 적이 있었던가요. 모든 자연이 눈 앞으로 다가옵니다.
저 나무 이름이 무엇이었던가요. 나무 이름을 모르니 그냥 색깔대로 “그린 튜리”. 아직은 조금 더운 초가을, 아주 작고 하늘하늘한 잎들이 무성한 나무. 그 잎들 사이사이로 석양의 햇살이 안개처럼 새어 나옵니다. 그뒤에 슬며시 보일락말락 유럽풍의 삼층집이 보입니다. 핑크빛 지붕에 엷은 주홍과 미색에 가까운 노랑색의 컴비네이션입니다.
그런데 앗, 그 집 지붕위에 안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큰 고무 풍선이 떠 있고 내가 잘 때 읽은 바로 그 책의 제목이 구름을 퍼내어 쓴 것 같은 글씨로 보입니다. 아, 이 집은 옛날 옛날의 그림동화책속에, 모짜르트의 어느 오페라속에, 세잔느의 수채화 속에서나 봄직한 집입니다. 왠지 알 수가 없는데, 참으로 알 수가 없는데, 그 집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들어가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둠속 고뇌의 흔적들만 보았던 밤들- 그 밤들 때문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 어쩔 줄을 몰라 했던 날들. 이 새벽도 그 밤의 연속이긴 하지만 저 집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봅니다.참으로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봤습니다. 꼭 보고 싶었던 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