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다음날 아침은 언제나 청명하다. 청명한 하늘은 마음도 청명하게 한다. 어제 그제 이틀간 시나브로 비를 내린 날씨 때문에 젖은 산길이 미끄럽지 않을지 걱정하면서 그래도 안 가고 후회하느니 가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9시에 출발해서 전철을 탔다.
전철 안은 그야말로 초만원, 모두 배낭을 멘 등산 차림이다.
불광역에 10시 5분 도착. 전철이 꾸역꾸역 토해내는 인파는 가히 놀랄 지경이다. 역 구내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다. 화장실부터 들리려했더니 줄 선 길이가 10미터는 된다. 꽁무니에 섰는데 예쁜 분홍색 모자를 쓴 정애가 나온다.
2번 출구를 나가니 정애가 1착, 내가 두 번째로 왔다. 역 밖이나 안이나 발 디딜 틈 없이 초만원인데 15분 쯤 지나니 썰물처럼 모두 빠져 출발하고, 그제야 우리들은 좀 한가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호주에서 일시 귀국한 박방생도 오고, 멀리서 온 이명원과 김두경을 끝으로 모두 20명이 모였다. 남자 12명, 여자 8명. 여느 때보다 단출하다. 늘 개근하던 동문들은 이 시간 어디 있을까.
35분에 불광역 사거리에서 좌회전, 구기터널 방향으로 접어들어 걷다가 한국여성개발원을 지나 보건사회연구원에서 길을 건넌다. 이곳에서 각각 근무하던 정순영 남정자를 못 본지가 꽤 오래다. 산으로 접어드니 초입에 장미공원 쉼터가 있어 5분간 휴식을 취하며 후발 팀을 기다린다. 안내 지도를 보니 둘레 길은 모두 12개 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우리가 갈 성곽 길은 7번 코스로 2. 7 Km, 1시간 40분 거리라고 표시돼있다.
장미공원이지만 장미는 길 건너편에 있고 여기는 그저 햇볕에 반짝이며 신록을 뽐내는 갖가지 나무들의 잎 새들 뿐이다. 하여간 초록빛은 항상 마음도 푸르게, 기분 좋게 한다.
일렬로 올라가는 좁은 길은 모래흙이지만 평탄한데다 적당히 젖은 것이 미끄럽지 않아 산행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앞서 전철역에서 본 사람들은 이미 시야에서 멀리 떠나고 우리끼리 만의 오붓한 산행이 이어지면서 소곤소곤 얘기꽃이 만발한다.
얼마 가지 않아 전망대에 닿는다. 여기 서서 보니 북한산 봉우리들이 일렬횡대로 사열하고 있다. 머리에 족두리를 쓴 것 같은 족두리봉부터 시작해, 우측으로 향로봉 비봉 승가봉 문수봉 보현봉. 그 보현봉 아래 대남문이 보인다.
멀리 그 봉우리들과의 거리가 아득해 보이는데 그 사이 계곡에는 집도 보이고 푸르른 산들도 보이고 북한산은 참 넓고 큰 산이라는 걸 실감한다.
전망대 주변엔 송화가 한창 만발해있다. 만지면 부서지면서 노란 가루를 내는 송화가 빙 둘러있는 게 색다른 풍경이다. 그들을 보니 어릴 때 명절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송화 가루를 조청으로 반죽해서 다식을 찍어내던 추억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엔 그 일도 끝났다.
여기서 기념사진 박고 다시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약수터에서 약수 한 모금씩 마시고 잠시 쉬었다. 가져온 간식꺼리들이 줄줄이 알사탕처럼 잇따라 나온다. 인절미, 술, 오렌지. 건포도, 피땅콩, 참외 등등. 약수터 이름이 탕춘대라고 써있다. 한자로 蕩春臺인가? 연산군이 질탕하게 봄놀이를 즐기던 장소라 탕춘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연산군이 신하들과 여인들과 질탕하게 놀기엔 초라하고 좁은 장소라는 느낌이다. 기껏해야 20명이 놀기에도 좁은 곳이니까.
하여간 탕자 연산군이 놀던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기운 내어 출발한다. 약간의 바위를 지나고 나무 계단도 지나면서 둘레길이란 게 기복이 별로 없는 참 단순한 길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루함을 달래고 걷는다.
어떤 남자가 모임에서 듣기를 “10m 밖에서 하는 말을 못 들으면 약간 귀가 먹은 것이고, 5m밖에서 하는 말을 못 들으면 조금 귀가 먹은 거고, 3m 밖에서 하는 말을 못 들으면 아주 귀가 먹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집에 가서 부엌에 있는 부인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그래서 10m 밖에서 “여보, 뭐해” 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다시 5m 밖에서 같은 말을 물었는데 역시 묵묵부답. 그래서 부엌 앞에서 다시 ”여보, 뭐해?“ 했더니 부인 왈 ” 내가 칼국수 만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자꾸 물어요?“ 하더란다. 누가 귀머거리일까.
이럭저럭 유머를 듣고 웃으면서 좀 더 내려가니 안내소가 나오고 등산객 수를 체크하는 투시기를 통과한다. 그 투시기는 마침 휴식 중이었다.
거기서 구기동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조금 내려오다가 뒤쳐진 동문이 있나하여 잠시 쉬면서 기다렸다. 주환중이 보이지 않아 어디쯤 왔나 전화를 걸어보니 벌써 식당에 혼자 도착하여 목을 축이는 중이란다. 참, 빠르기도 하다. 지름길로 날아간 모양이다. 편편한 길을 지나 구기동에 닿아 진흥로 28번지라고 쓰인 곳에서 길을 건너 우리 등산회가 단골로 삼고 있는 민속집에 도착한다. 진흥로라는 거리 이름은 여기서부터 죽 오르면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이라 진흥로로 명명됐다고 한다.
식사에 앞서 막걸리로 건배. 박효범 회장이 선창한다. 우리 등산회의 공식(?)구호는 “빠삐용”이란다.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용서하며 살자.
누가 지었는지 걸작품이다.
이집 밑반찬은 별로지만 보쌈 하나는 일품이다. 한약재를 넣고 삶은 돼지고기가 냄새가 없고 아주 연하고 부드럽다.
한껏 포식하고 누릉밥으로 마무리했는데 행선이가 가족 모임이 있다고 먼저 일어나며 식대를 얼른 계산하고 간다. 간 다음에야 모두들 알고 박수를 쳤다. 오늘 땀을 무척 흘린 행선이 멋져. 박수소리 들었지? 이심전심 텔레파시로 말야.
참가 동문 : (무순) 박효범 우무일 정기봉 심항섭 강기종 민병훈 권영직 송인식 남득현 주환중 김두경 이명원 (남 12명)
박미자 박정애 박방생 유정숙 채수인 전행선 이성희 이향숙 (여 8명)
왕년의 명 기자 솜씨가 유감히 발휘되었네요.
오래간만에 나오셔서 산행기까지 써 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