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산행기(188회)
이 성 희
일본영화 <4월 이야기>에는 활짝 핀 벚꽃이 바람에 휩쓸려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는 나무 아래를 사람들이 저마다 우산을 쓰고 분주히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사방이 온통 꽃잎으로 가득 차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처럼 쏟아져 내리는 꽃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 그들을 만나러 간다.
어제 내린 비로 말끔하게 씻긴 공기가 상쾌하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좌석이 절반은 차 있다. 모두들 어찌나 부지런한지. 오늘은 여학생들이 대거 참석한 까닭에 또 다른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것 같다. 남학생의 수가 이렇게 열세인 적이 언제 있었던가. 신임 회장단의 노력 때문인가보다. 먼 데서 온 친구들도 여럿 눈에 띈다. 미국에서 온 김영자, 호주에서 온 박방생, 인천의 박부강 그리고 가끔 동심어린 이야기를 선사하는 제천의 신덕애..., 모두 고맙다.
바야흐로 山川과 草木은 지금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부지런히 갈아엎는 흙냄새가 코 끝에 느껴지는 듯 하다. 산과 들에 싱그러운 빛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은 아침 안개에 싸여 때로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도착하니 11시, 이미 남주차장 입구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벚꽃은 만개했고 길은 아름답다. 그 터널을 따라 줄지어 걸어간다.
마이산(馬耳山)은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680),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686).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계단을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아오른다.
A조는 왼쪽 고금당쪽으로 향한다. 가다가 작은 폭포를 만난다. 살짝 뒤로 젖혀져서 느리게 흘러 마치 냇물처럼 천천히 떨어지니 폭포라기보다는 가파른 냇물 같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금빛으로 번쩍이는 위압적인 고금당 지붕은 지나치게 속기에 젖었다. 금값은 날마다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르는데 그 빛깔은 왜 그렇게 불편한지 모를 일이다. 본래 번쩍이는 인생과는 거리가 먼 까닭인가. 잠시 땀을 들이며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득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머언 풍경이 펼쳐 있어 이에 그 거부감을 날려버리고 이내 전망대를 향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우중 우중 걸어가는 발밑 작은 다리 아래에서는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져 조그만 소용돌이 또는 파문을 만들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이 거기에도 있다.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어댄다. 하늘을 본다. 숲이 사납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숲이 아니면 바람을 모를까. 벗었던 옷을 다시 챙겨 입는다. 그래도 전망대 밑에 멍석을 깔았다. 장회장이 새 포도주를 땄다. 여학생들을 위해서라니. 우리는 오늘 그래서 행복하다. 이 순간을 위하여 건배. 순식간에 병이 바닥나버린다.
어제 내린 비로 방사능도 먼지도 말끔히 가라앉은 오솔길은 정답고 호젓하기까지 할 터이다. 육신을 벗어난 마음은 애드벌룬되어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나와 강인자 박찬홍, 그리고 남득현 등 네 명은 따로 봉두봉까지 갔다가 부지런히 탑사로 향한다. 흙과 돌을 섞어 이겨 붙여 세워 놓은 듯한 두 봉우리가 붓끝처럼 가지런하다. 봉우리 안에 있는 동굴에서는 얼음이 어는데 그 형태가 특이하여 거꾸로 얼어 올라간다고 한다. 암마이봉 마루턱을 돌아 탑사로 내려오니 산에 온 사람들이 거기 모두 모여 있는 것처럼 북적댄다. 주위는 온통 돌로 쌓은 탑들로 가득 차 있고... 어느 處士가 평생 동안 혼자 쌓았다는 80여 개의 크고 작은 돌탑들,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이 아무리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니 신기하다. 만든 사람의 정성이 그 모든 탑들에게 스며들었을까.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보여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며 사계절 아름답다고 한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거리에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단풍 또한 장관이라고. 4계절이 모두 볼만하니 언제 와도 좋을 듯하다.
두 봉우리 사이로 나 있는 나무계단을 다 오르니 샘이 나온다. 시원하게 한잔 마시고, 부지런히 북부 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거의 다 내려왔는데 눈앞에 갑자기 하얀 산마루가 나타난다. 일부러 조성하기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산 전체가 온통 희디흰 꽃으로 뒤덮여 있다. 기운세고 솜씨 좋은 화가가 마이산 한 봉우리 끝에다 연한 분홍색을 잔뜩 묻혀 한 번에 쓰윽 붓질해 그려놓은 것처럼.
주위가 온통 전주식당인데 그 중에서도 전주가든이다. 이미 먼저 온 친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전라도의 맛, 밑반찬. 내가 좋아하는 더덕구이가 기다리고 있다. 뜻밖에 과식했다. 게다가 그렇게 노오란 동동주까지 나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돌아오는 버스 안. 박정애의 사자성어를 필두로 박부회장과 박 회장의 밤을 새워 연마한 노력 끝에 나오는 끝없는 이야기들. 우리들의 영원한 오락부장 이재상의 재담. 시의 적절한 김정차의 원자로와 방사능에 관한 진지한 강의 등등. 잠시도 우리의 눈과 귀를 놓아주지 않는 친구들 덕에 즐겁고 알찬 하루를 마감하고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일상으로 돌아간다.
참석자
심항섭 장용웅 김두경 황정환 박태근 정기봉 이종건 박찬홍 박상규 송인식 남득현 주환중 김정차 이재상 우무일 박효범 김군승
김영자 유정숙 정숙자 이성희 김풍자 김양자 박미자 정영경 이상례 강인자 박방생 임매자 방유정 채수인 유미희 유정순 신덕애 이향숙 전행선 백창숙 이현주 박정애 남영애 박부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