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아차산(해발 287M)을 오른다.
행복 하게도 서울 근교에는 좋은 산들이 많은데 비교적 얕트막해서 산이라기엔 좀 그런 산이다.
허긴 미국에선 산의 정의는 고도가 1000피트 이상이고 그 아래는 HILL 이라 부른다니 아차 언덕이 맞을성 싶다.
여유를 갖고 광나루역에 가보니 벌써들 모여 있는데 정기봉 부회장이 앞장서 맞고 있다.
이어 박효범 회장 그리고 박미자 부회장이 오는 사람 마다 일일히 김군승이 제공한 고급 양갱이 두개씩 나누어 준다.
군승인 매번 이걸 공짜로 제공 하는데 혹 언젠가 빠지기라도 하면 "어~ 내 양갱이 어딨어?" 라는 힐난(?)도 받을지 모르겠다.
주르르들 1번 출구로 빠저나와 광장 중학교 옆을 지나 광장 초등 학교를 낀 골목길로 간다.
오른 쪽으로 얼마전 까지 김중은이 총장으로 재직 했던 장신대가 보인다. 장신대란 키 큰 사람들만 다니는데가 아니고 "장로회 신학 대학교"를 줄여 부른 거다.
워커일 방향으로 가다 아차산 생태 공원을 통과 하여 오른다.
날씨는 청명 하고 기온도 아주 알맞다.
아직은 꽃들이 피긴 이르지만 약간의 산수유가 노릇하게 보이기도 한다.
아~범 회장은 연신 앞뒤로 인원 파악 중이다, 24명 이란다.
여성은 6명, 정숙자,김양자,남영애,진영애,이성희등이고 남자는 18명으로 우무일, 민병훈,심항섭,장용웅,변병관,신해순,박찬홍,강기종,이명원,송인식,권영직,김두경,민일홍,남득현등에 요사이 몸 상태가 썩은 안 좋다는 김군승 까지도 함께 한다.
이 아차산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인근의 용마산, 봉화산등을 함께 아우르며 폭 넓게 자리 잡은 산이다.
삼국시대 부터 각국의 전략 요충지로 남쪽을 향해 불꾼 솟은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불린단다.
아차산 한자 이름이나 유래도 제 각각이다 그중 하나는 이렇다.
조선 시대 세조 때라고도 하고 명종 때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그 당시 아주 유명한 맹인 점장이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발 백중으로 쪽집게 귀신 같이 맞추는것으로 유명 한데 하루는 평소 무당,굿, 점등을 혹세 무민 한다 하여 이를 아주 싫어 하는 임금이 잡아 들여 시험을 했다. 맞추면 살려주고 틀리면 사형 시킨다며 "이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고?" 하니 태연 하게 "예~ 쥐가 세마리 있읍니다" 하는거라. "음, 쥐는 맞았으나 한마리 인고로 너는 엉터리다." 하고 사형 집행을 명 한거다. 그래서 이산 밑 한강 변에서 집행을 하는데, 한편으론 미심 쩍어 그 쥐의 배를 갈라 보니 배속에 새끼 두마리가 있는 거라. "아차" 싶어 사형을 중지 시키려 하나 때는 이미 늦어 끝나 삔기라. 이후로 아차산이라 불렸다는 믿거나 말거나가 있다.
여기엔 백제가 고구려의 남침을 막고저 쌓았다는 아차산성이 있고 고구려군이 주둔 했다는 보루도 여섯 군데나 있다. 유명한 온달 장군의 일화와 아련한 평강 공주의 애틋한 사연도 있어 이산을 접하고 있는 광진구와 구리시는 서로 끌어 당기려고 혈안 이다. 건너편 강건너 산엔 신라의 검단 산성이 있고.
그리 가파르지도 않는 산이라 좀 오르니 낙타 고개다.
여기서 주력은 대성암 쪽으로 가고 일부는 미리 터 잡는다고 해맞이 광장으로 갔는데 아래에는 한강이 유유히 펼쳐 있어 강바람과 산 바람이 겹쳐 불어 대니 제법 쌀쌀 하다.
하 기다려도 안와서 재차 연락하니 정상에서 보잔다, 궁시렁~
정상 부근에서 합류 하여 자리를 펴서 앉은뱅이 막걸리를 위시 하여 오가피주, 마플주등으로 목구녕 청소를 한다.
별로 덜 알려진 산 같은데 등산객들이 어찌 많은지 완전 저자 거리 같다. 인파에 휩쓸려서 오르 내려 대공원 왕갈비집에 오니 박창호, 이승희가 문앞에서 영접 한다.
넓직한 방안에선 박정애, 김광현이 와 있었다.
이래서 이성희는 사정상 먼저 갔지만 남21명 여6명이 오랫만에 불고기 등으로 소란 스럽게 먹는다.
김두경의 찬조금 출연에 박수를 치니 장용웅 회장은 4월15일 봄 야유회에 많이 오지 말라며 고도의 노이즈 마켓팅을 펼친다.
이렇게 또 하루, 아쉬움의 미련이 남아 당구장으로 이차로 삼차로 결국 어둠속으로 스러 졌다. 어둠의 자식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