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싸라 비야!!!"
오늘은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운 東大門에서 모인 단다.
아침 10시도 넘어 느긋하게 "동동 동대문, 동대문을 열어라~~" 흥얼 거리며 성곽길 산책을 나선다.
정시에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가니 입구에는 벌써 낯 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
이현주가 오니 모두 출발 이다.
낙산 공원을 향해 성곽을 끼고 올라 가는데 중간 중간 암문이 있다. 들어 가지는 말랬는데 웬고 하니 낙산 공원 저편에서 꺽정이 주환중이 오고 있다, 요즘 아주 씽씽 하다.
이 도심 성곽길은 조선 시대 한양을 방비 하기 위해 내사산(해발 125M의 낙산, 342M의 백악산 이라고도 하는 북악산, 338M의 인왕산과 목멱산 이라고도 하는 262M의 남산)들을 연결 하여 축성한 총길이 18.2KM의 성곽으로 산책로는 20KM 남짓이다.
그 밖으로 외사산(용마산,북한산,덕양산,관악산)을 연결 하여 총 182KM의 트레킹 코스와 연결 한댄다.
오른쪽 창신동 쪽의 옛날 단장의 아픔을 지녔던 단종비가 살았다는 곳을 옆으로 하며 낙산 공 원을 향해 간다.
그런데 이홍위라는 이름의 단종을 왜 단종이라 했을까? 너무 일찍 죽임을 당해 자손도 단종 됐을 텐데,,,,,,,,,단종비는 그래도 80 넘어 살았덴다.
낙산 공원은 잘 정리 돼었는데도 계속 정비 중 이다.
공원을 빙~돌아 한성대 입구역 쪽으로 가는데 누가 이쪽으로 오라고 막 부른다. 어려서 이쪽에서 살던 이영식이다.
오손 도손 정담들을 나누며 내려 오는 면면들을 보면 내년 등산회 부회장직을 쾌히 맡은 박미자, 오랜 기간 부회장으로 봉사한 이성희를 필두로 수석 부회장 신동복,그리고 전행선,유정순,이석영과 한명희, 정숙자,이현주,이향숙등 10명이다.
향숙이 보고 오랫만에 보니 많이 이뻐 졌네 하니까 "응, 초가 지붕을 기와집으로 바꾸니 그렇게 됐어." 한다. 효범은 이 말뜻을 알아 들을까?
그리고 남자들은 박효범,주환중,김두경,송인식,민병훈,김정차,남득현,이상훈 회장,민일홍,장용웅과 내년도 부회장을 맡기로 했다는 100만불 짜리 다리의 사나이 정기봉과 강기종,심항섭,우무일,임승빈,이영식,이태동,권영직등 19명 합29명이 줄줄이 문화 유산, 사적 탐방을 한다.
한성대 입구역으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올라 길가에서도 보이는 혜화문 옆으로 간다.
이곳은 주택가로 죽- 가는데 옆에서 성희가 이동네에는 수녀님들이 사는 숙소가 많텐다.
한때 축구로 유명 했던 경신고를 끼고 가는데 세멘트 담장 밑은 바로 성벽 돌들이 깔려 있다.죄다 문화재 일텐데, 참 아깝다.
와룡 공원에 도착 하여 잠시 휴식, 간식 타임.
전행선의 따끈 따끈한 커피에 이현주는 큼지 막한 모찌, 찹살떡, 정숙자는 과일등 으로 입맛을 돋군다.
이 성곽들은 태조 이성계가 1392년 개성의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 하며, 바로 무학 대사와 한양으로 천도 하여 성곽을 쌓는데,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쌓았었다. 이후 27년이 지나 4대의 세종4년에 전면 석성으로 수축 하였다.
그후 260여년간 쓰다가 19대 숙종때 과거 병자 호란 말미에 청나라와 했던 축성및 개축 금지 약속을 깨고,병자 호란과 임진 왜란을 겪으며 별 구실을 못하던 석성을 숙종 30년에 큰 돌들을 짜맞춰서 더욱 정밀하고 견고한 석성으로 개축 했다. 당시 축성 방식 사진이 안내문에 있다.
農閑期인 겨울에 32만명의 인부와 기술자 2200여명을 동원해 대공사를 벌렸었는데 사망자 만도 872명이나 됐었댄다, 당시 한양 인구가 약10만 여명이라니 얼마나 방대 하였겠는가?
오늘 날씨는 아주 쾌청이고 기온도 영하 5도에 체감이 영하 10도라 하나 바람도 별로고 하여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맻힌다.
여기 여자들 사진에는 신동복이 안 보인다, 찍쇠 뒤에 숨었었나?
다시 성곽을 끼고 성너머집 옆으로 해서 말바위로 가는데 이바위는 말안장 처럼 생기기도 하였지만 북악산 끝자락에 있는 바위라 하여 末바위 라고도 한댄다.
드디어 삼청동으로 내려와 줄서서 기다리다 먹는다는 만두 전문집 "다락정"에 도착. 회장의 발 빠른 사전 예약으로 편히 먹게 됐다.
여기에 숙자가 몽골의 칭키스 보드카를 내니,무일이는 일본산 고급 소주, 질 세라 용웅은 홍삼주 도자기를 꺼낸다.
모듬전에 만두를 포식 하고 나오니 이어지는 길이 北村길. 韓屋 마을로 들어 서는데 묘령의 여인 둘이서 승빈일 불러 세운다, 사진 하나 박아 달래는 거다.
그 많은 중에 하필 승빈을 유독? 알고 보니 일본 관광객이다, 역시 외국 눈에도 잘 생기고 늘씬한건 마찬 가진가 보다. 못 생긴건 취급 못 받는 더러운 세상!!!!
안국역 쯤에서 뿔뿔이 헤어지고 일부는 국일관 까지 왔으니 도대체 오늘 얼마나 걸은 거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