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주의 미래를 향하여
“지난 금요일 많은 감동 받고 여러해동안 별로 가치 없이 살아왔었음에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우리 지역사회에 큰 헌신을 하고 있는 길주씨 부부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그냥 어쩌다 그 자리에 있게된 사람일 뿐예요….”
어제 이길주와 교신한 짤막한 이메일의 일부이다.
지난 금요일 (11/19)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이하 미교협)와 민족학교의 설립기념 만찬의 모임이 있었다. 미교협은 16년, 민족학교는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둘다 우리들의 친구 이길주가 창립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각각 현재 이사장 그리고 전이사장인 것이다 . 이름만 봐서는 여늬 한인단체들중 하나인 것 같지만, 모임의 취지와 순서 그리고 이 만찬에 초청된 사람들과 연사로 강단에 선 인물들이 색다르다. 거기엔 한인컴뮤니티의 행사 때마다 자주 얼굴을 보이는 고정 인사들도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이고 겉치레의 지루한 인삿말도 없었다.
기억나는대로 열거하자면, 자신들도 동양계의 이민 1.5-2세들로서 정치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의 재정을 다루는 회계 감사관 John Chiang의 이민자 가정에서 힘들었던 시절을 보낸 추억담, 여성 하원의원 Judy Chu의 멋진 영어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스피치, 그리고 청소년 여성 단체인 Building Sisterhood 에서 이민자들의 권익 옹호 활동가로 일하는 고교생 지윤정양의 대견스러운 연설, UCLA에 재학중이며 민족학교에서 이민자 권익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김윤신양의 현장에서 수집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듣는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김윤신양은 신체가 부자유한 작은 체구의 심리학전공의 여대생으로 “사람들이 더욱 행복하고 알찬 삷을 살도록 상담하는 임상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그녀는 이길주가 세운 민족학교에서 이민자들의 의료혜택등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여 왔다고 한다.
이길주는 여러 세월동안, 우리가 어렴풋이만 알았던 무슨 사회 활동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고, 동창회 일로 선두에서 열심히 일 하여 오고(특히 총동창회보를 창간부터 7년간 만들어 왔었다) 테니스와 골프도 잘하고 그의 전공대로 노래도 잘 부르며 또 최근에는 가정에서 손주들을 위한 특정한 날들이 있어 그날에는 아무 약속도 인하고 … 그렇게 바쁜 사람으로 알아 왔는데 그는 사실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의 일을 자신의 몸과 재물과 시간을 희생해가며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떠한 강인하고 실력이 있고 여유있어 보이는 남자들도 할 수 없는, 아니-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이길주가 자신의 하는 일과 관련된 무슨 행사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 나는 좀 피하고 싶었다. 나 하고는 상관 없는 일 정도로 생각했었을까.
그러나 실제로 이길주가 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와 상관이 있는 현실적으로 시급한 일들이었다.
이민자들 특히 아시아 태평양계 소수민족의 의료권리, 그들의 이민 사회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교육과 캠패인, 그들의 삶을 위한 권익 옹호와 법과 제도의 개혁을 위한 운동, 그들의 문화와 예술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행사 또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세금보고와 통역서비스, 미국에서 살면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 대한 정보제공, 홍보 그리고 신청등에 실제로 도움을 주는 각종 봉사 할동 … 특정한 일에 잠시 도우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권리를 홍보하고, 교육하고, 조직하고, 실제로 가서 돕고 같이 괴로워하고 이끌어 주는 역할을 감당한다.
필요하면 이 방면의 정치가들에게도 조직적으로 어-필을 한다.
그래서 미교협과 민족학교의 이 날 모임의 표어는 “함께 가자, 힘찬 발걸음으로, 미래를 향하여 !” 이었다.
“MARCHING ON - MOVING FORWARD - GETTING STRONGER !”
이날 행사에 뭘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근사한 저녁만찬에 초대받은 것으로 알고 참석하였던 한국에서 온 현 영과 나는 그저 놀랍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였다.
아니, 아직도 그 소녀같은 노래 잘 부르는 이길주가 이 모든 일들을 하여 왔었고 또 우리 나이에 아직도 하고 있다니.
행사 마지막에 “장구학당”의 신명나는 장고 연주가 있었다. 장난꾸러기 같은 초등학생들 부터
오십대 아주머니로 보이는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아마츄어 연주자들이
“함께, 힘차게,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는 행진곡을 신나게 쳐대었다. 우리의 타악기 음악이 멋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날 밤엔 특별히 감동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웃겼던 것은, 이 날 길주의 남편이며 모든 일에 도움을 주고 있는 구루마다씨에게
“우리는 길주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입니다” 라고 조금 큰 소리로 소개 했던 일이다.
특히 나는 이길주와 같은 국민(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으로 으쓱하였다.
그리고 남자 동창으로서 좀 창피스럽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