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졸업 55주년 기념 여행)
미국에서 참가자 김 승 원
11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저무는 강가에 서서 무심히 건너편 기슭을 보니 여름내 짙푸른 녹색으로 청청했던 참나무 숲이 어느새 주황색, 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내 조국의 단풍은 선명한 빨강 노랑으로 찬란한 풍경 이었는데….
채 한달도 안된 친구들 과의 55주년 기념여행의 기억이 아득한 옛날 일처럼 아름 아름하다.
졸업 55주년 기념 여행, 법정 스님께서는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하셨지만 우리들은 영혼은 커녕 여행 가방의 무게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오랜만에 만남의 들뜨고 기뻤었다,
10월 21일 (월)
버스 3대에 나누어 탄 친구들은 태백산 자락 경북 봉화로 달리는 차안에서 이미 이산 친구들 과의 상봉으로 여기, 저기서 반가움에 겨운 감탄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골 거짓말이라는 “너 하나도 안 변했어”가 우리들에게는 거짓말이 아닌 것이 55년 만에 처음 만난 친구들도 단번에 알아 보았으니…..
경북 봉화로 달려 가는 마을 길은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과 푸르른 하늘을 밝히는 선명한 주홍빛 감나무, 빨간 사과 나무로 후기 인상파의 그림 같은 색채의 향연을 펼치며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그리고는 금강산도 식후경, 봉화에서 송이 전골로 푸짐한 점심을 먹고, 도산서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올해 7월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유서 깊은 서원, 한석봉의 글씨로 쓴 도산서원 이라는 편액을 선조 임금님으로부터 하사 받은 서원, 나처럼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았던 학생은 지금도 퇴계 이황 선생님께 죄송하다.
다음 여정은 청송, 사과 주산지 답게 길 옆에 줄줄이 늘어선 사과나무에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이고, 우리는 사과 소스에 재웠던 한우구이로 정말 맛 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미국에서 산지 어언 30년이 넘는 동안 사무치게 그리워 했던 내 조국 산천이 였는데 이제는 한우구이까지 나의 그리움 리스트에 추가 해야 겠다.
10월 22일 (화)
둘째날 여행권은 주왕산 트레킹, 걷는 것보다 사진 찍는데 더 열중한 백발이 성성한 남학생, 여학생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떠들며 촬영에 열심이다.
다시 후포를 향해 그림 보다 더 고운 가을 동해안을 끼고 달려서 후포항에 도착, 짙푸른 가을 바다를 내다보며 아침에 잡았다는 홍게를 한 마리씩 해 치우니 내가 너무 호사하지 않나 싶다.
저녁엔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졸업 55주년 기념 만찬 행사”,
70살 중턱의 소년, 소녀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환호하고 “누가 우리를 늙었다고 했는가?”포효하며, 세월에 닦이어 느슨 해진 눈빛마저 다시 반짝이며 한마음, 한소리로 만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10월 23일 (수)
이제, 집에 가는 날,
아침엔 고성 화진포에 들렸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 어서 어울어져 빼어난 절경을 빚어낸 곳, 속칭 김일성 별장이 있지만 주로 선교사들의 휴양지로 사용 되었다는 돌집이 동해 바다를 내려다 보며 서있는 곳.
화진포의 호수물은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해의 거센 파도에 막혀 호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호수와 바다가 공존하여 더욱 빛나게 하듯이 우리도 서로를 존중하며 이해하며 살아갔으면,
서로의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해 손 잡고 평화롭게 걸었으면….
이제 내년을 기약하기 힘든 나이………..
서둘러 먼길 떠난 친구들, 사랑하는 아내,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친구들도 눈에 띄는 나이,
이제 우리는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넉넉치 않다.
이역 만리 미국 땅에서 저무는 강을 바라 보며 지난 날을 반추해 보니 디아스포라로 살아 온 반평생 언제나 그리워 하던 내 조국과 어릴 적 친구들이 너무 소중하다.
노란 은행잎 하나만 떨어져도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던 시절, 조개탄 빨갛게 타고 있는 난로에 데워 먹던 도시락이 그렇게나 맛나던 시절을 생각하게 해준 우리 회장단과 집행부에 노고에 정말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친구들아 겨울이 다가 오지만 모든 것에 감사하고 순탄 강물처럼 구비구비 흐르다가 인연이 되면 또 만나자!!!!
201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