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청매실의 계절. 이효숙의 초대로 19일(토) 보령에 있는 그녀의 농장으로 매실 따기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
효숙이 부군의 고향인 그곳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실을 수확한 게 작년이 처음이고 올해가 두 번 째인데 그 귀중한 기회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조반도 거른 채 오전 7시 30분 압구정역 앞에 31명의 동기들과 효숙의 가족(부군과 아들)과 친지, 그리고 남정자와 현영의 부군 등이 관광버스에 설레는 마음으로 동승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렵던 미국의 박부강(현재 인천에 체류 중), 분당의 이상례와 강소화, 윤영자, 의정부의 신동복, 강북의 서경석이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 인사하기에 바빴다. 이 여학생들 틈에 낀 용감한 청일점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갖가지 간식을 준비해온 김군승. 그는 청일점의 외로움을 오랜만에 해후한 부강이와의 대화로 달래는 듯했다.
분위기 좋고 시끌벅적, 거의 모두들 생전 처음 가보는 매실 따기 체험에 기대 만땅인 표정들이다.
무엇보다 모두들 걱정한 것은 날씨. 주초부터 “주말에 장마가 시작된다.” 더니 18일엔 “19일 중부지방엔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오겠다.”고 겁을 준 터라 날씨 때문에 매실을 딸 수 있을지 걱정했다.
차가 출발하자 효숙이와 현영이 준비해온 찰밥과 물이 제공되어 아침밥을 맛있게 먹기 시작하고 김군승 표 초콜릿 봉지와 체리 통조림이 주어졌다.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연꽃으로 유명한 궁남저수지에 도착해서 끝이 안 보이는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며 각종 연꽃을 감상했다. 흰색 연분홍 노랑 수련은 만개했으나 연꽃은 봉오리가 맺혀 머지않아 활짝 필 기세다. 날씨는 덥지도 않고 흐린 상태. 가장 큰 걱정인 날씨가 우리를 크게 도와주는 듯 하니 오늘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리라는 서광이 비친다.
다시 30분간 달려 닿은 곳은 부여의 무량사. 아미타불을 主佛로 모시는 신라시대의 고찰인데 현존하는 전각들은 인조시대에 중수한 것들이다. 이곳 원통전의 관세음보살은 화관 위에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아미타불을 조각하고 千手를 가진 모습이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각자 참배하거나 휴식을 취한 후 절 입구에서 정말 제대로 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이집은 효숙이네 단골이라는데 맛깔스럽고도 정성이 담겨있다. 식도락도 관광의 즐거움인데 도토리가루와 표고버섯가루를 섞어 만든 독특한 비법의 묵, 쌀 막걸리, 시원한 동치미가 입을 즐겁게 했다. 식당에는 보령 사는 김정식 부부가 깜짝 방문했다.
여기서 한 시간 쯤 더 가서 매실 농장에 닿았다. 매화 관광은 다녔으나 매실이 주렁주렁 달린 걸 보니 신기했다.
약간 덜 익은 파란 빛은 청매실, 다 익어 노란 색을 띄면 오매실이라 하는데 영양면에서는 청매실이 단연 으뜸이라 요리하는 데는 청매실만 쓰인다고 한다.
면장갑과 앞쪽으로 메는 가방을 하나씩 받고 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날씨는 덥지도 비가 내리지도 않아 약간의 땀은 흘렸으나 좋은 컨디션으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열매는 두 개씩 또는 세 개씩 붙어있어 손가락으로 훑어내면 잘 따졌다. 효숙의 가족들은 따낸 매실을 큰 바구니에 담기에 바빴다. 조금 지나니 금세 익숙해지고 제법 재미도 붙었다. 손놀림도 빨라졌다.
높이 달려 따기 어려운 것들은 가지를 아래로 휘게 하여 따고, 그도 어려운 곳에는 현영이 긴 나뭇가지로 두드려서 털어내고 떨어진 것을 주웠다. 이곳 매실은 농약을 전혀 사용치 않은 완전 무공해 식품이다.
당초 출발할 때 효숙이 부군 강명구 회장께서는 우리가 딴 매실을 대략 한 명 당 10Kg 정도 될 것 같아 우리들 각자에게 그 정도를 주겠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너무 열심히 일한 결과 4시간 동안 무려 800Kg를 따는 진기록을 세웠다.
현영의 부군, 남정자 부군께서는 “사대부고 여학생들은 과연 매사에 적극적이다.”라고 감탄하셨다. 암, 천하부고 여학생들인데...
5시가 지날 무렵 강 회장은 그만하고 돌아가자고 했는데 아직 조금 남은 매실을 보며 “아까워, 아까워.”하면서 얼핏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앉아보지 못하고 4시간 연속 서서 일했는데도 위를 쳐다보느라고 목은 약간 아프지만 공기 좋은 곳에서 여럿이 대화하며 재미있게 일한 탓인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그 매실은 10Kg들이 박스에 차곡차곡 담겼고, 각자 두 박스씩이 주어졌다. 이걸 택배로 부치면 화요일에 수령하게 되고 그동안 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것들을 직접 집으로 가져가야 한단다. 무거우니까 운반이 큰 숙제였다.
버스 안에서는 운전 기사가 또 우리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스스로 노래방을 하자면서 기사는 먼저 7080 세대의<여자의 일생>과 <어머님>을 구성지게 부른다. 운전하면서 스스로 노래하는 기사는 이 나이에 처음이라 모두 배꼽을 잡았다.
결국 유쾌한 노래방이 열려 서울까지 오는 내내 아름다운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내릴 때 쯤에는, “이 많은 매실들을 누구에게 나눠줄까? 무엇을 만들까? 술을 담궈? 아니면 매실 엑기스를 만들어 여름 더위를 이겨볼까?” 갖가지 행복한 고민들을 했다.
더위를 지켜주는 여름의 파수꾼인 매실을 직접 따서 만든 것들로 인해 올 여름은 틀림없이 건강하게 버틸 것 같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초대한 효숙이 가족분들, 노동의 가치와 땀 흘리는 기쁨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 마음 씀에 하느님도 도우셔서 최적의 날씨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