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면산 (287회 산행기)
이 성 희
숲은 비록 한 음절 단어지만 함축된 의미는 넓고도 깊다. 또 조형미도 근사해서 ‘ㅅ’을 큼직하게 쓰고 그 아래 ‘ㅜ‘를 길게 늘어뜨린 후 ㅍ‘을 맨 아래에 납작하게 붙여 써 놓으면 작은 조각품처럼 우아하게 보이기도 한다.
작든 크든 모든 숲이 우리들에게 주는 울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없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삭막하기 짝이 없으므로.
아스팔트를 뒤로하고 숲길로 들어서니 차들의 소음은 멀어지고 문득 서늘해지면서 매미소리가 사방에 자욱하게 퍼진다. 매미는 7,8년씩이나 幼蟲으로 있다가 成蟲이 된 뒤에는 그 짧은 한 시절을 위하여 치열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 하고 생을 마감한다는데... 한 때 아파트 단지 안에까지 쳐들어와 사람들을 잠 못 이루게 한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개체수가 줄어들었는지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자주 앉아 쉬던 정자는 예상대로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다음 쉼터를 찾기로 한다. 약간의 오르막이 지나고 너른 마당이 나왔는데 그 곳 역시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빈틈없이 앉아 있어 끼일 틈이 없었다. 오늘 따라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차분한 분위기는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별 수 없이 한 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막걸리를 한 잔씩 돌리는데 그 때까지도 두 영애가 도착하지 않았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계단 밑으로 내려가는데 진영애가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남영애가 탈이 나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토증세가 있고 시야가 흐리며 어지럽다>는 것이다. 좀 더 내려가, 백지장같이 질려 서 땀을 흘리고 있는 친구를 들여다보았다. 그냥 내려가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한참 쉬었더니 좀 괜찮다.>고 해서 조심조심 데리고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고 잠깐 사이에 얼굴빛을 회복한 친구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이 모두 부실한 탓>이었다고 본인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렸다.
山行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높이지만 더운 날씨에 빈속으로 산에 오르는 일을 삼가야 될 듯하다.
(고웁게 익어가는 우리,,.)
자리를 정리하고 하산하기 위해 스틱을 챙기려는데 김윤종의 지팡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전 사람 중의 하나가 들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박창호가 말하며, 그 순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이봐요! 거기>하고 소리치면서 순식간에 뒤를 따라 치고 올라가자 동시에 스틱주인도 뒤를 따른다. 잠시 뒤, 손에 스틱을 들고 내려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자기 일행 것이 아닌가 해서 가지고 갔다나? 그걸 변명이라고? 모두 어이없어 했다. 어쨌거나 그 스틱의 반은 박창호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언제부턴가 식후커피가 버릇이 되었다. 사당역 주변의 커피숍은 삼층까지 꽉꽉 들어차서 앉을 곳이 없었다. 오나가나 사람에게 치이는 날인가보다. 차선으로 빠리바케트에 갔다. 빙수와 커피를 시키고 빵도 몇 가지 샀다. 이종건씨가 총대를 멨다. 갑자기 주인남자가 와서 주의를 준다. 물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 배낭으로 들어가던 손이 주춤했다. 사서 마시라는 의미라나.
그런데 커피가 뜨거워서 배낭에 있던 작은 잔을 꺼내 덜어서 마시려는데 다시 사장이 왔다. 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느냐고. 사뭇 으르딱딱거린다.<몇 번씩 말했는데 왜 못 알아듣느냐, 다시 한번 그러면 여기서 나가야 된다.>그러면서 눈을 부라렸다.(미안) 곧장 쫓아낼 기세다. 우리 여섯 명은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모두 얼어붙었다. 그 남자는 그리고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가버렸다.
왜 아무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서슬이 퍼렇게 피의자 다스리는 형사의 얼굴로 닦달을 당하고도 누구도 입 한번 떼지 못했다.
거기 앉아 있는 내내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무엇을 잘못 했는데?
원래 누구한테 조리있게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줄 모르기는 하지만 그대로 나오기는 너무 억울해서 남영애와 같이 안주인을 붙들고 항의성 발언을 하고 사과를 받기는 했어도 생각할수록 어이없었다. 내 성격상 석달 열흘을 곱씹으며 왜 그때 한 마디도 못 했나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노인이라서 홀대를 당한 것인가? 아니면 시류에 잘 적응하지 느림의 탓인가? 입맛이 썼다.
이제부터는 산행 후 커피타임은 생략하는 방향으로 재고해야 할까보다.
그나저나 어디 <노인을 위한 까페>는 없는 것인가?
송인식 김윤종 민일홍 박찬홍 이명원 박창호 정만호 이재상 김두경 강기종 이종건 정영경 이성희 남영애 진영애
그런데 어떤 빠리바케트인지 그 주인은 좀 심했던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