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산행기 ( 172회 )
이 성 희
--사랑,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네. 사랑,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네.--
세월은 이런 노랫말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시간은 원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다가오고. 보내고 싶지 않아도 미련없이 가버리니 그렇지요.
지금은 마치 땅끝마을에서 아득히 수평선을 바라보듯, 그렇게 사라지는 올해의 끄트머리를 보내며 아쉬워합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길을 찾아 헤매듯이, 우리네 삶이란 언제나 모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지요.
모두 열아홉 명이 모였습니다. 방송에서 너무 호들갑을 떨어 지레 몸이 움츠러들었나, 늘 보이던 친구들이 여럿 눈에 뜨이지 않는군요. 그런데 오늘 아침, 또 한번의 부음을 들었지요. 멀리 김천에 살던 송지남군이 유명을 다리 했다고 합니다, 잠시 모두 말을 아끼고 침묵합니다. 애꿎은 담배연기만 찬바람 타고 허공으로 흩어지고.
서초구와 강남구에 걸쳐 누워 있는 구룡산과 대모산은 접근성이 좋아서 시민들의 산책로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九龍山(해발 306m)에는 세종대왕릉(영릉)이 있었으나 1496년 여주로 遷葬하였고 자세히 보면 아홉 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大母山(293m)은 높이도 비교적 낮고 도심에 근접해 있어 명산으로 대접받지는 못하나 예전엔 여러 임금이 나오는 福地明堂處로 풍수가들이 예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들머리로 들어선 우리 일행의 발걸음에 먼지가 풀석거리고 바지가랑이에 부옇게 먼지가 휘감기네요. 하늘마저 흐려 있어 사방이 칙칙한데 그래도 며칠 전 내린 눈가루가 갈색 잎새들 위에 흰빛 무늬를 만들어 마치 목화꽃이 피어 있는 듯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산죽처럼 가는 줄기를 가진 키 낮은 나무도 홀로 푸르르기도 하구요.
바람이 불지 않아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고 30여분 지나면서부터는 땀이 배기 시작했지요. 아무리 추워도 산 을 두 개(!)나 넘는데 어찌 정상주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재상군은 오늘도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부지런히 자리를 펴고 단풍나무술을 처억 꺼내 놓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군요. 때마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늘 안주까지 깔끔하게 챙겨오는 것을 보면. 때맞추어 회장님의 술잔이 비기를 기다리며 민일홍군은 안주를 옆에서 대령하고 서 있는 모습에 모두 파안대소합니다. 농담과 웃음이 어지럽게 얽히며, 시린 마음들을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넘나듭니다. 그렇게 잠깐 쉬는 사이, 어느새 손끝이 시리고 오한이 몰려오네요. 서둘러 정리하고 내려갈 준비를 합니다.
-나는 내려갈 때가 제일 좋더라.- 우리의 산꾼 김윤종군은 늘 옳은 말만 하네요. 오르지 않으면 내려갈 때의 편안함도 느낄 수 없겠지요.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일기예보가 맞으려나보군요. 궁마을 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두 파트로 나뉘었습니다. 인가가 내려다보이지만 四圍는 뜻밖에 괴괴할 정도로 조용하네요.
연포탕이라는 걸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낙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죠. 살아 있는 낙지를 끓는 물에 집어넣어 몸부림치는 모양은 차마 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원한 국물은 일품이었고 오징어 순대도 별미였습니다.
식당으로 직접, 우무일 정진구 정영경 박미자 그리고 혼자 산행한 김두경이 합류해서 모두 스물 네 명이 되었습니다. 역시 송년이라 온갖 종류의 술이 넘쳐납니다. 모두들 참 잘도 마시네요.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누군가가 ‘어 눈이 오네!’ 하고 소리쳤습니다. 붉게 상기된 얼굴들이 일제히 창밖으로 향합니다. 잠깐 사이에 길 위에 하얀 이불이 덮였습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가서 신발끈을 맸지요. 그리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상기된 얼굴 위에 차가운 눈송이 몇 개 떨어집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지하철 입구까지 걸어가는 사이에 모자와 배낭이 눈을 하얗게 뒤집어썼네요. 서로 웃으며 눈을 털어 줍니다.
1월, 덕유산행에는 오늘 오지 않은 친구들의 많은 참석을 기대하며, 오직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여러분 모두 Happy New Year!
년말을 보내는 산행기 쓰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