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친구를 떠나 보내며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한계령 고갯길을 더듬듯 내려가든 버스가 멈추고 나는 주전골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한발 한발 옮겨 놓으며 2006년 수해로 부서졌던 등산로가 말끔하게 보완 보수되어 한결 좋아 졌음을 느낀다.
절벽에 붙어 자라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저런 척박한 환경에서살아 남기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이나 저 나무들이나 모두 좋은 환경에서 낳아 자랄 수 있다면 덜 고통 스러웠을터인데 ....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저 나무들의 자태에서 삶의 내공을 느끼며 바위와 어울려 펼쳐보이는 모습들은 나에게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준다.
움푹 파인 바위에 비취색으로 찰랑대는 물을 보며 오늘 마음에서 맴든 心淸淨是佛(마음이 맑고 고요하면 나의 진 면목과 만날 수 있다) 이 귀절이 이해가 되며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진다.
주전골로 내려가다 다시 흘림골로 거슬러 오르며 펼쳐지는 자연의 화폭에 내 마음을 얹어놓고 요며칠 어머니의 입원 등 크고 작은 일들로 답답하고 우울했던 가슴을 자연으로 치유하며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즐기고 있다.
주문진에서 연하고 쫀득한 회에 소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전화기를 통해 전해진 친구의 비보를 듣는 순간 훅하고 들이마신 숨이 멈추고 눈 앞에선 하이얀 구름과 검은 구름이 빠른 속도로 겹처져 흐르며 부딫혀 깨지는 암울한 아뜩함에 한 참이나 멍하니 온 세상이 멈춘것 같은 망연 자실함에 빠져든다. 떨리는 느낌으로 걸어본 전화에서 슬픈 당혹스러움이 잔뜩 배어 있는 목소리로 "정섭아! 어쩌면 좋으냐"하는 소리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마음 저 속에서 부터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이 마구 무너져 내리며 가슴이 아리고 결려온다. 그렇수록 경련처럼 감정이 솟구치며 눈물이 나온다.
내가 너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향을 사를 때에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런데 그 표정이 낮설어 . 하얗게 이를 내 보이며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채 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너의 어깨는 반가움과 기쁨으로 흔들렸는데....내가 두손을 모으고 무거워진 슬픔으로 너 앞에 무릎꿇고 절하니까 난망 스러우냐 !
굳어진 표정에 입가에 머문 강한 의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냐 !
속으로 너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서는 나의 억압된 슬픈 마음을 진정 모른단 말이냐 !
오 ! 너에게 눈 물로 절을 하게 될 줄 , 하얀 국화 꽃을 올리는 친구들의 손이 떨려 올줄 누가 꿈이나 꾸었겠냐 !
"티벳 사자의 서"에 보니까 사망후 혼이 단전과 척추, 백회혈을 통해 빠져나와 유체주위에 머무른다고 하더라 만져지고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와 함께 하고픈 마음에 빈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이 아픈 간절한 마음을 너는 보고 있겠지.....
너를 알고 웃으며 손을 잡던 이들의 가슴에 갑자기 안겨준 이 당혹 스러운 상실감을 어찌할 줄 몰라 눈물과 회한으로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너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고 잊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침침한 죽음이 짙게 배어있는 듯한 벽제 승화원. 화강암의 건물에 모여든 어두운 표정과 무거운 색갈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에게서는 놀람과 슬픔,좌절과 절망, 상실 등의 감정으로 굳어진 채 눈가에 소리없이 눈물이 흐른다.
23개의 관망실 앞에 웅기종기 모여 앉아 웃음을 잃은 채 눈빛으로 상대 내면의 아픔을 핥아주는 사람, 날카로운 눈빛 속에 칼날을 숨긴 채 원망과 미움, 경멸과 비웃음으로 상대의 어둡고 추운 가슴에 예리한 아픔을 박고있는 사람, 선망과 존경 고마음과 감사의 표정이 저 밑에서 부터 치밀어 올라 어깨로 하여금 처절한 슬픔을 표시하게 하는 사람 등 수많은 어둡고, 무겁고, 침중한 분위기 속에 2시간여 매몰되어 있다가 하얀 보자기 속에 자그마한 항아리 하나씩을 받아들고 무겁기는 하지만 올때보다는 한결 빨라진 걸음으로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오는 듯한 수 많은 대열 중 한 대열의 뒤를 따라 나오며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 희비와 고락이 교차하는 순간순간들의 연속으로 , 기뻣던 일보다는 슬프고 힘 들었던 순간들이 먼저 생각나 근심과 생각 속에 고달프게 살아온 이 삶이 죽음의 과정을 통해 온갖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 모든 것으로 부터 의 해방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육신을 불살라 이생을 벗어나 무한대의 자유와 고요 속에 머무를 너의 이생 에서의 흔적을 흑석동 성당 유골함에 두고 생각과 감정이 멈춘 고요하고, 평온하며, 아늑함이 펼쳐진 세상에 은은한 빛을 발하는 고매한 모습으로 서서, 엷은 미소로 배웅하는 너의 모습을 그리며 우리는 서로 어루만져주려는 듯한 눈길로 서로에게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몇 명이 한 식당에 모여 테이불 중앙에 너의 잔을 놓고 같이 마시자고 하면서 잔도 부딫쳐 보고 , 나의 빈잔과 너의 잔을 바꿔가며 한 잔 받아 하며 술을 따르는 이 친구들의 어설픈 몸짓에서 너를 조금씩 조금씩 떠나보내려 마음 구석이 비어져 가는 아픔이 시간 속에 매몰되어 간다.
우리 모두 "김 동인 " 너의 명복을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