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다보면 날씨가 아주 안 좋았거나 산행이 힘들었거나 교통이 불편했던 곳이 오래 기억에 남고 그 고생을 해본 경험이 뿌듯한데 이번산행은 만점이자 빵점인 셈. 우리에게 모든 것이 맞춤산행이다. 날씨도 좋고 떡갈나무 낙엽을 부스럭거리며 호젓한 산길을 올라가는데, 흙산이고 경사도 거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웠는데 미국에서 온 한명희가 많이 힘들어했다.
한 10분 늦게 옛골 종점에 도착하니 우리 일행이 아무도 안보여 순간적으로 내가 읽은 하루키의 '1Q84'의 주인공처럼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나? 하고 당황했는데 건너편을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가득하다. 바로 출발, 이젠 15분도 안 기다리는구나. 그런데,매번 옛골에서 내려서 매봉,이수봉등 청계산을 다녔는데 바로 건너편에 나지막하게 인능산(285m)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때는 우리가 가기엔 너무 낮은 산이었을까?
여학생들이 9명이나 와서 듬직하다. 이성희 부회장을 비롯 남영애,박정애,유진희,전행선,정숙자,정영경 그리고 한명희와 나.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아.
옛골을 떠나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시간반을 걷다가 헬기장에 모여서 여러사람들이 가져온 다양한 차와 과일을 맛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조금 오르막 내리막을 가다보니 인능산 정상이란다.내려오면서 전망이 제일 좋다는 곳에 이르니 정보부의 하얀 건물들,서울공항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내려다보는 맛에 등산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지도.
오야동 능선을 타고가다 신촌동으로 빠지니 곧 마을이 오손도손. 아파트가 아니니 정겹다. 서울 공항후문앞에 있는 예쁘장한 한정식 전문점에 도착하니 노준용회장, 박태근수석 부회장,정태영,황정환,최진석이 와 있었다. 퓨전한정식에 막걸리,소주,맥주를 마시는데
항상 모자라던 주류가 이젠 남아돈다. 식사가 끝나니 화투판이 벌어지고일부는 당구장으로,기원으로, 우리는 집으로. 일년만에 와 보는 산행이지만, 지난달에 가본듯 모든것이 편안하고 익숙했다. 보너스는 낙엽을 실컷 밟아본 것,그리고 그 소리에 귀기울인 것. 인능산을 우리가 전세낸 듯 조용했던 것. 시간여행'처럼 내가 마음의 밸브를 열어 놓을 수 있었던 것...
산행기 횟수가 거듭하면서 산행기 필자도 하나둘 늘어나게 되니 그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