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성주군의 부탁으로 대신 이 곳에 올린다.
Nessun Dorma
(내가 겪은 이번 전쟁)
안 성주
이번 졸업 45주년 행사는 나에게는 마치 전쟁과도 같았다. 꼭 이겨야 되는 그리고 혼자 싸워야 되는 외로운 전쟁. 단어가 과격하다면 “Lonely Challenge”라고 나 할까? 문제를 못 맞추면 내일 사형 당할 “Turandot” 의 주인공 Calaf 가 “Nessun Dorma!” (오늘밤은 아무도 잠 못 이루리라) 라고 혼자 외치듯이 나도 추운 밤에 달을 처다 보며 잠을 못 이루었었다.
무기도 안주고 동반자 하나 없이 혼자 덩그러니 전쟁터로 보낸 노 준용 회장님이 야속 하기도 하지만 바보같이 “Yes Sir” 하고 따라 나선 나도 미친 놈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냐? 사대부고 16회 아니냐? 자부심을 가져야지! 할 수 있다! 음악을 공부 안 했어도, 강단에 서 본적이 없더라도, 박자가 약간 틀려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일이 오면 우리는 승리할 터이니까! “Vincero!”
그러나 전쟁 준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이 명희와 임 매자 에게 지지 않으려고 올림 길 인가 내림 길 인가를 너무 빨리 무리해서 걷다가 왼쪽 무릎 근육이 나갔다. 한 동건 말 듣고 천천히 여유 있게 걸었어야 하는데… 고통을 참으려다가 침이라도 맞아보자고 생각한 것은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저녁 Loveland 에서였다. 한 수남 군에게 허벅지를 까고 흰 살을 내 놓고 침을 맞고 있는데 왠 아줌마 부대가 몰려 오더니 후라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어 대다가 “어머 진짜 사람 아냐?” 하고 호들갑을 떤다. 그 후 따라오던 그룹들도 계속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 본다. 침은 열 몇 개를 꽂아 놓았지, 바지는 벗을 수도 내릴 수도 없는데 한 수남이는 “야 이거 20분은 꽂아 놔야 돼” 하고 수남이 같은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무대에 오를 때 절룩거리지 않아 고맙게 생각한다.
서귀포 호텔 방 배정은 신 해순, 우 무일, 신 건철 등과 Room-mate가 되었는데, 신 해순군은 볼일(?)이 있는지 일찌감치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밤 3시가 지나서야 만취되어 오는 바람에 신 건철군의 인생 상담을 듣게 되었다. 춘천인가에 자기가 직접 건축한집을 팔아 말레시아(?) 어느 시골로 이사 가는 이야기, 나이가 들어 서는 자식들도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참 보통 일이 아닌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오래도 들었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들과 같이 대가족이 오순도순 한집에서 살아 보려고 집터를 찾고 있는 중인데, 둘 중에 하나는 잘못 되도 한참 잘못 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내 철학을 펼치려 할 때 건철이한테 전화가 왔다. 마누라가 당장 나오라고 한단다. 네 마누라가 여기까지 왔냐? 내 마누라 보다 훨씬 쎄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정xx 여사가 불러 낸다고 한다. 참 부러웠다. 와! 정말로 부러웠다. 나는 이제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서 잠을 자려 하는데 요번에는 우 무일이 바톤을 받아 16회 정치에 대한 설명회를 갖는데 마치 정치부 기자로부터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평론을 듣는 것 같았다. 신건철 교수님 강의 저리 가라였다. 역시 타교에서는 똑똑한 학생들만 부고로 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목소리를 보존해야 되는 수면이 부족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다음 수요일은 기념 골프 라운딩을 하기로 되어 있어 박 상규가 데리러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루 전인 화요일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다. 나는 추위에 강한 사람인데도 노래가 무어길래 갑자기 닥쳐 온 차가운 날씨에는 겁이 났다. 골프 치러 갔다가 감기나 걸려 목소리가 잠기면 어쩌나? 나는 무슨 꼴이고 우리 노 준영 회장님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 죄송합니다 여러분, 우리 16회를 대표로 독창을 하려던 미국에서 온 안성주군이 며칠 전 골프를 치다 감기가 걸려 오늘 노래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미국으로 가버리면 고만이지만 우리 노회장은 어떻게 될까? “그것 봐 내가 뭐랬어, 경험도 없고 증명도 안된 사람을 불러다 우리 16회만 바보가 되었잖아!” 그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생각되어 골프고 뭐고 목부터 살리자 하는 생각으로 하나 밖에 갖고 가지 않은 “도꾸리 스웨터” (Turtle neck sweater)를 밤이고 낮이고 입고 다니다가 길지도 않은 모가지에 땀띠가 났다.
노회장이 왜 “안성주 사건”이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여러 사랑하는 동문들에게 최선을 다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고 촌놈이 강남구민회관 이라는 멎진 공연장에서 데뷔를 하게 된 것도 모두 여러 동문 들께 감사 하는 바입니다. 또 덕분에 제주도 에서 젊고 어여쁜 반주자도 만나 장래를 기약하게 되었고, 몇 명 남지 않은 성북동 대표 홍 공명 이와 잠실대표 김 양자 부회장님의 꽃다발까지 받았으니 감개 무량할 뿐입니다.
공연 후 10회 여자 선배님들이 나를 납치해가 “16회래, 미국에서 왔대, 젊지?, 멋있다,” 등등 민망한 코멘트를 들으며, 아 적어도 여자 선배님들은 예쁘게 봐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데 또 한번 잘난 척 한 것, 선배님들처럼 예쁘게 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