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에서<夜宴>이라는 중국 영화를 감상했다. 제목 그대로 한 밤의 연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내용이다.
황제인 형을 독살하고 황제 자리와 그 형의 부인인 황후마저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동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증과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살해에 쓰인 독에 관한 내용이 흥미를 끌었다.
황제의 동생과, 그 동생의 여자였다가 강제로 황후가 된 여자가 각각 몰래 따로 전문가에게 가서 황제를 죽이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강한 독약을 주문한다.
독약 전문가는 “흑전갈의 독에 다른 독을 첨가하면 직접 먹지 않고 빨대에 넣어 냄새를 귀속에 풍기기만해도 금세 죽는 초강력 독약이다.” 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극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더 강한 게 없냐고 묻는다. 그때 전문가가 말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은 인간의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독 자체보다, 그 독약을 주문하고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세상 무엇보다 독하고 사악한 치명타라는 것이다.
드디어 밤에 파티가 열리고 술에 그 독약을 탄 황후에 의해 황제가 죽고, 그러나 일이 꼬여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끝까지 사랑했던 동생과, 그 동생을 짝사랑하던 여자까지 세 사람이 희생된다. 한 사람을 죽이려던 계획이 세 목숨을 앗았으니 독약보다 더 무서운 게 황후의 증오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독약이 아니라 독을 품은 그 마음이 자신을 망치고 남을 죽이는 걸 많이 본다.
독한 마음을 품을 때, 화를 낼 때 우리 몸에는 독성이 강한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 독성은 독사에게 세 번 물린 것과 같이 크다고 한다. 흑전갈로 만든 약보다 더 강한 독이 몸에 생성되어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갑자기 화를 참지 못하고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거나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사람이 얼마든지 주변에 흔히 보인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 나를 괴롭힌 사람에 대해 지나친 원망과 증오심으로 복수를 꿈꾸다가 오히려 그 독에 자신이 해를 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득점골이 아니라 자살골을 넣는 일이다. 자살골로 손해 보는 쪽은 자신이다. 극도의 증오심이 빚어낸 자살골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복수는 새로운 복수를 낳고 결국은 복수의 연속 고리를 만든다.
일본의 돌고래 조련사로 평생 살아온 오하라다 야스히사가 지은 저서 <행복- 돌고래에게 배우는 21가지 삶의 지혜>를 보면 행복의 원칙이 21가지 나열돼있다. 그러나 요약하면 “무조건적으로 베풀라. 무조건 용서하라. 무조건 수용하라.”는 것이다.
돌고래가 피곤할 때나 아플 때나 귀찮을 때나 무조건 인간을 위해 즐거운 쇼를 하듯이 조건 없이 사랑하고 베풀고, 결과가 어떻든 따지지 말라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두 번째는 상대가 무슨 일을 하던지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
세 번째는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민하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돌고래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 없이 적응하고 항상 즐거워하는 것처럼 모든 환경에 적응해야하고, 괴로운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하고 분해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있는 그 상태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충고다. 이렇게 하면 원한이 쌓이지 않고 항상 좋은 일만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만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이웃을 행복하게 돕는 것이 내 행복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불행한 이웃을 보면 내 마음도 편치 못하다. 내 이웃이 불행을 당할 때 항상 밝고 친절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도와서 마음이 편하게 해주면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렇다고 성인군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한 집착과 판단 미스 때문에 성인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목표를 높이 두고 노력하면 그만큼 행복에 가까워질 수는 있다.
내 마음 속에 독을 품고 그 독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인격이 황폐해지고 긴장하고, 건강까지 잃는 것보다는 상대가 예뻐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마음에 독을 지니지 않고 살아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남에게 베푼 것은 언젠가는 이자가 붙어서 되돌아온다. 그러나 미운 마음으로 던진 것은 돌이 되어 내게 날아온다.
불교에서, 고통 받는 인간을 구제하는 大慈大悲의 화신으로 꼽히는 관세음보살은 원한을 뛰어넘어 자비심을 키운 보살이다.
그는 다겁생 전에 일찌기 모친을 여의고 남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어느 바닷가에 살았다. 열 살 쯤 됐을 때 아버지는 너무 어린 두 아들을 홀로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잘 키울 수 있는 여자를 골라서 재혼을 했다.
새엄마는 자기 자식도 낳지 않고 친자식처럼 두 아이를 잘 키웠다. 아버지는 자기가 집을 비우면 혹시나 아들들을 학대할까봐 3년간은 집을 멀리 떠나지 않고 지켜봤다. 3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안심을 하게 되어 며칠 간 출장을 떠났다. 출장간 사이 새엄마는 곰곰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회의를 느끼지 시작했다.
“그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훗날 그가 죽으면 재산도 아이들에게 갈 것이다.”
새엄마는 아이들을 죽이기로 하고 바다 건너 무인도로 놀러가지고 아이들을 유인했다. 배를 타고 무인도에 도착하여 아이들이 정신없이 장난에 몰입한 것을 보고 새엄마는 혼자 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사흘이 지나는 동안 동생은 죽고, 형도 죽음에 이르러서 새엄마와 부모, 세상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는 나처럼 억울하고 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착하게 살아도 고통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불행한 사람들을 구해주며 살겠다.”
이렇게 미움을 눈 녹듯 녹이고 자비심으로 승화시키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수백 생을 거듭한 동안 중생구제라는 자비를 실천하는 대보살이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결심 여하에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이 될 수 있고, 불행한 사람을 행복하게 바꾸는 사랑의 묘약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자기 마음을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자기 삶이 승리할 수도 있고 패망할 수도 있다. 자기 삶은 자기 책임이다.
두 도둑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남의 재물을 훔쳐서 지옥에 갔고, 한 사람은 남의 슬픔을 훔쳐서 천당에 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더니 두 명이 마주 앉아서 웃으며 아주 길고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상대방 입에 넣어 먹여주고 있었다. 지옥에 갔더니 그 길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자기 입에 넣으려고 애를 쓰지만 먹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먼저 남의 고통을 덜어주면 그 만큼 복을 받는 것이 세상사 이치 같다. 남의 고통과 슬픔을 훔치는 습관이 쌓이면 운명이 바뀌고, 개개인 운명이 모두 바뀌면 사회가 바뀌고 나라의 운명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말이 다가오니 문득 마음 속의 미움과 원망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