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주년기념수학여행에서 돌아 온 이후 눈을 뜨는 아침마다
~국화꽃 져 버린 가을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현영의 열정 지휘로 무대 위에서 들려준 남녀혼성 아름다운 합창을 떠 올리며 조그맣게 불러본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정말이었다.
해안 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보이는 것들에 쏙 빠져들었었다.
아득히도 먼 옛날에 생겨 난 화산의 흔적이 바다와 어우러져 곳곳에 독특하고 깊은 색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길과 마을 뒤에 너울너울 날개 같은 잎을 드리운 나무들이 보이고 토종 몸집 작은 말과 망아지들도 보이고.
본토에선 볼 수 없는 신선하고 새로운 맛이었다.
한라 영실 계곡으로 내려오며 바라 본 수많은 오름 들은 들판에 봉실봉실 솟아 있어 나지막한 제주의 옛 집인 듯 부드럽고 정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고 그 이름들도 고유어로 남아 있어 그리운 이름 부르듯 자꾸 불러 보았다.
망체오름, 윗새오름, 새끼오름, 붉은오름, 물찻오름.....
배가 牛島를 향해 가는 날 아침, 점점 다가오는 우도는 쉬고 있는 소를 닮았다하는데 멀리서 보아도 허리부분의 누런 풀밭이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모두들 전망대와 등대가 있는 곳을 향해 그림처럼 다가가서 마지막 여정을 즐기는데, 나는 다리가 아파 풀밭에 앉아 쉬며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옛 등대 이야기에 생각이 머물러버렸었다.
그 전쟁은 일제가 이겼다.
이 때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해군대장 토오고오(東鄕平八郞)는 신격화 되어 있고 이순신 장군, 넬슨제독과 함께 세계 3대 해군명장에 들어 있다.
여행 둘째 날 겁 없이 덤벼 산행에 따라간 내가 윗새오름 쯤에서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자 김건택 동문이 다리를 늘여 빼는 수고를 했었고 김윤종 대장은 대피소에 가서 물파스를 구해다 살포해 주고 자기의 스틱 두 개를 내게 양보 해 주었었다.
민폐 한 가지 더.
하필이면 발 편한 운동화로 골라 신고 간 게 바닥창이 떼어져서 덜거덕 거리는 게 아닌가? 이 때 ‘만물상’이란 별명을 가진 김동문이 배낭에서 새 끈을 꺼내 아낌없이 잘라 칭칭 동여 매주었고 조금 내려가다가 끈이 풀리자 ‘맥아더’별명을 가진 권영직 동문이 칭칭칭 동여매 주어서 무사히 내려왔지만 靈山 한라를 선택하고 겪은 나의 망신살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 한방 친구 한춘자와 유진희에게 말하니 배꼽을 잡고 딩굴거리며
춘자 왈 “ 야, 너 마침 만물상 땜에 매끈한 끈으로 묶어서 다행이지 만약 새끼로 묶었다면 영낙없는 빨찌산이었겠구만”
인디언들은 2월을 ‘홀로 걷는 달’이라 한다는데 그 때 제주섬 한 바퀴를 다시 돌고 싶다.
‘빨찌산‘이란 죄목으로 어이없이 죽은 수많은 제주인들과 남겨진 채 숨죽여 살며 죽음보다 못한 세월을 견딘 선인들의 세월을 더듬으며.
가다가다 다리 아프면 프랑크시나트라가 부른 <My way>를 들으며 계속 걷고 싶다.
이계용 동문이 만찬 때 부른 목소리가 더 달콤하지만 그의 CD는 가진 게 없으므로.
노회장님-우도에서 뒤쳐진 친구를 위해 되돌아 와 안내하느라 윗옷이 땀에 푹 젖은걸 보았습니다. (폭삭 소갔쑤다)
박태근님 촬영감독노릇 애 쓰셨어요.
박찬홍님 세 다리로 빠른 진행 위해 진 뺏죠.
여회장단, 진행위원여러분 숨은 공로 잊지 않을께요.
* 참석한 동기 여러분 너무나 반가웠고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
이 글은 45주년기념여행에는 함께 하지 못한 故 김응희와 그 밖의 故人이 된 동문들께 먼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