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여학생 18명, 남학생 21명 모두 39명이 고등학교 졸업 55주년 기념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을 총괄한 박상규 단장의 엄명에 따라 이번 여행을 날짜 순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1. 출국
아침 일찍 7시 15분에 인천공항에 모여 출국수속을 밟는다.
하나투어에서 라면과 얼굴 팩을 주는 티켓이 있어서 받으려 했더니 라면은 입국 수속에 걸린다며 이미 받은 것도 투어 회사에서 회수한다.
대만 입국 수속할 때 보니 육류수입은 대만돈 10만원(한국돈 약 400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라면 갖고 입국하다가 200만원 벌금 물수 있다는 투어 가이더 얘기가 뻥은 아니었네...
2. 입국
9시 45분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이곳 시각 11시 반에 도착한다.(대만과는 1시간 차이)
현지 가이더의 안내를 받아 2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대략적인 이 곳 설명을 들으며 차창으로 스치는 타이페이 시내를 바라본다.
대만은 남한 크기의 1/3, 전체 인구 1/2 정도의 나라이다. 이 곳도 우리처럼 저출산 고령화의 추세이다.
2천미터 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고,
1인당 평균 소득은 2만5천불 정도이다.
한때는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이 높기도 했지만 우리처럼 삼성, 현대, LG, SK같은 대기업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 위주 경제의 한계이다.
재건축을 하려해도 입주민 100명중 한 사람이 반대를 해도 재건축이 되질 않고 사람들도 변화를 좋아 하지 않아서 옛 건물들이 새 건물들과 나란히 병존한다.
3. 101 타워
101 타워 지하에 있는 딘타이펑(鼎泰豊)으로 들어가서 딤섬과 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자기 아버지가 중국인 화교이면서 음식점을 경영했었다는 포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볶음밥이란게 보기엔 간단한 것 같지만 각종 양념이 골고루 밥에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
후라이팬을 쉴 사이 없이 계속 돌려야 하는 노우하우가 가장 필요한 음식이란다.
식사를 하고 전망대에 오른다. 아래로 펼쳐지는 타이페이 전경을 바라보면서 이 타워의 특징인 지진 방지 시설용 Wind damper에 대해 알아 본다.
87층에서 92층에걸쳐 8개의 와이어 로프에 매달려 있다.
댐퍼의 무게가 660톤이고 와이어 로프 무게도 20톤이 된다. 참고로 전쟁용 탱크 무게가 약 50톤 정도 되니 그 무게가 어느 정도인가 가늠이 될 것이다. 지난 2015년 6.2도 지진이 발생하였을 때 이 건물은 좌우로 1.5센치만 움직였다니 이 댐퍼의 효능을 짐작할 수 있겠다.
4. 고궁 빅물관
루불 박물관,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 꼽히는 박물관을 4시부터 5시까지 단 1시간만에 주파하였다.
淸이 망하면서 박물관도 이리저리 옮겨진다. 자금성에서 상해로, 남경으로, 四川으로 옮겨 다니다가 1948년 대만의 기륭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에 이 건물이 완공되면서 69만점의 문물들이 이 곳에 소장되게 되었다.
이 박물관에서 가 장 인기가 있는 취옥 배추와 肉形石 (일명 동파육)이 출장중이어서 이번엔 볼 수 없었다는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비싼 모공정, 옥으로 된 병풍, 신혼 부부용 돌베개, 상아로 만든 투구(套球), 양귀비 모습 그리고 각종 옥 반지, 옥 목걸이 등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면서 박물관 앞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한다.
5. 스린(士林) 야시장
풍성한 먹거리로 가득찬 곳으로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인지,
늦은 점심 식사를 잘 한지 얼마 되질 않아서인지, 우리 나이가 그런 곳은 어째 좀 그래서인지
그저 그렇게 쭉쭉 지나쳤다.
6. 서문정 (西門町)
대만의 명동거리라고 불리우는 거리이다.
비가 약간씩 뿌리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거리 이름이 말해 주듯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어로 된 거리를 아직도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만은 17세기에 네덜랜드의 식민시기를 거쳐 청에 복속되지 않으려고 20년간의 항쟁기를 거쳤으며 이후 1683년부터 1895년까지 청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1895년에 일본이 다시 대만을 점령하여도 그들은 '또 주인이 바뀌었나 보다'하고 여겼고 오히려 일본에게 감사의 마음마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본이 이전 청나라의 지배시절보다 나았으며 60 간 지배하면서
여러 근대화 시설을 갖춰 주었다고 여긴다. 또한 일본은 우리나라를 대륙 진출의 통로이자 쌀의 보급기지로 여겼고 우리에게 콤플렉스를 느껴서였는지(?) 우리를 강하게 통치한 면이 대만 통치와는 달랐다.
7. 저녁식사
이제 긴 하루를 마치며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바비큐와 샤브샤브이다. 조동환 회장이 저녁 식사 모두를 부담하여 주었다.
<여행 참가자> (무순)
여학생 : 강소화, 김종숙, 정숙자, 정영경, 진영애, 유진희, 유미희, 유정순, 강인자, 김양자,
임매자, 박정애, 서경석, 황양순, 남영애, 심춘자, 이석영, 김명현
남학생 : 박태근, 박상규, 이원구, 김윤종, 문신효, 안성주, 주현길, 신해순, 이명원, 천주훈,
윤봉천, 조동환, 정진구, 황정환, 민건홍, 심항섭, 박기양, 송인식, 강기종, 박효범, 남득현
만두 속에서 맛있는 물이 솟아나는 딤섬이 최고 였고, 뚱뚱한(?) 양귀비의 모습에 실망한 것은
나 혼자 뿐인가요 ? 101 타워는 역시 롯데 보다 한수 아래였고, 우리 조회장님이 부담한건
저녁식사 중의 술 값 이었습니다.
(여행중 재밋는 추억)
어리버리 1호 ; 박정애 양이 룸메이트 임매자 양의 비행기표를 들고 첵크인 카운터로 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