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기의 순간들.
돌이켜보건데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내게는 남이 경험하지못한 별스런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 것은 자칫 잘못되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던지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들이었다. 그러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고 대여섯번은 있었던 것 같았으니 보통사람들보다 좀 특이한 체험을 한 셈이다.
6.25 사변 당시 나는 서울에서 남으로 피난을 떠나게되었다. 그 당시 나의 아버지는 결핵으로 요양중이어서 할머니는 병간호를 위해 남으시고, 어머니와 나만 먼저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그 해 여름철에 15일을 넘게 땡볕속을 걷고 걸어서 경북 풍기에 있는 외갓댁에 도착하게되었다. 나의얼굴과 팔다리와 몸은 피부병과 함께 새까맣게타서 그 몰골을 본 외갓댁 식구들은 깜짝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중에도 미군 전투기의 오인 기총소사로 죽을뻔 했다던지, 충청북도 어디쯤에서선가 인민군이 지키고있던 기찻굴 근처 한 200여미터 떨어져있는 독립민가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있는데, 별안간 세이버 젯트기 1대가 날라와 그 이민군들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가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곳 인민군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고, 어머니와 나는 천지가 뒤흔들릴듯한 굉음에 놀라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었던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그후 외갓집에서 피난생활을 하고있던중 9.28 서울수복중이던 어느 가을날, 바야흐로 연합군의 압박으로 외갓집이 있는 소백산속으로 인민군들이 후퇴를 하고있었다. 아군이 쏘아대는 포탄이 소백산 쪽으로 떨어지니, 그폭음의 진동으로 마을 뒷 산에 널려있던 밤나무에 열려있던 잘 익은 밥톨들이 두둑두둑 잘도 떨어지니, 어린 동심은 신바람이나서 그 보배같은 밤알들을 수없이 주워나르기에 정신이 푹 빠져있었다. 그러던 한 순간, "쾅"하는 폭발음과 동시에 나의 몸은 번쩍 띄워져서 한 쪽으로 내동뎅이쳐젔다. 일어나려고 애쓰면 쓸어지기를 몇 차례 거듭한 후 겨우 일어나보니 머리쪽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알고보니,포탄 중 한 발이 밤나무 사이에 있던 나의 옆에 있었던 감나무 등걸에 떨어져 터지면서 파편을 모두 흡수하고 감나무 뒷 쪽에 있던 나는 파편 한 조각도 맞지않고, 단지 쪼개어진 감나무 쪼각 하나가 나의 목에 박혀 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운좋게도 혈관을 건드리지않고 근육에 박힌 것도 천운이라면 천운일까. 그날 근처의 한 외양간에도 포탄이 떨어져 소가 풍비박산이 되어 소의 살점이 마당에도 근처의 나뭇가지위에도 지붕위에도 떨어져 온통 소고기 일색이라 온 동네가 며칠을 두고 소고기국을 끓여먹었던 즐거운(?) 기억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소 꼴이 되지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하늘이 돌본 아이라고 입소문이 자자하였었다.
또 한번의 위기의 순간은 국민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인 진해의 한 해수욕장에서 일어났다. 부산의 사촌형이 놀러와서 해수욕장으로가 물놀이를 하던중, 갑자기 사촌형이 손을 흔들며 구해달라는 표시를하여 전혀 구조 경험이 없는 나는 구해줘야겠다는 일념만으로 접근하여 등을 내밀어 붙잡으라고 하였다. 그순간 나는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당황한 나머지 형을 내밀어치려고 애쓰고 형은 나를 더욱 세게 잡으려고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본능적인 밀어치기와 잡아채려는 힘의 대결장이 되어버린 아수라장이 되었다. 짧은 시간동안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이렇게 죽어서는 안된다며 죽을힘을 모아 형을 발로 힘껏 밀어치자, 나의 상반신이 수면위로 치솟는 순간 짐승같은 고함을 뱉어냈다. 그 때에 근처에 있던 한 고등학생이 튜브(우끼)를 던져줘서 얼른 잡아채엇더니 사촌형도 나의 몸둥아리를 잡고 물밖으로 올라와 같은 튜브를잡게되었다. 이렇게해서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나게된 두 사람은 탈진하여 뭍에서 수십분을 쉰후에야 겨우 기력을 되찾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이후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작은 위기의 사건들도 있었지만 최근에 또 한번의 위기의 순간을 겪게 된다. 작년 10월, 감기 뒤에 폐렴에 걸린후 원인불명의 폐출혈로 적혈구 수치가 7이하(정상수치는13정도)로떨어지는 극도의 위험상태로 빠지면서 중환자실에 1주일간 입원후 일반환자실에서 마무리를 지은 20여일간의 내 생애 최장시간의 입원기록을 세웠던셈이다. 어릴때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면서 위기의 순간을 맞았지만, 작년 10월의 입원은 죽음에 직면한 때의 나의 간구하는 절박함과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과 집사람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뒤범벅이 되어 절대자에게 기도하고 회개하는 시간도 가져봤다. 아퍼보면 성숙해진다고할까 고통과 후회의 터널을 지나고나니, 세상에서 귀중한 것과 가치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더 깨닫게 되고, 가족간의 사랑과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귀중함과 감사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짐과 동시에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고통은 스승같이 찾아왔다가 깨달음을 남기고 떠나는 것같다. 고통 때문에 더욱 지혜로워지고 강해질수 있는 것같다. 그 위기를 넘기고나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있었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하는 것 같으니 이것이 또한 위기가 주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