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만남이었다. 태어난 외손녀를 보기 위해서 뉴욕에 다니러 갔던 작년 1월, 원준이가 작업장 겸 가게로 쓰고 있는 사진 인화 가게가 마침 내 딸 아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가게로 찾아 간 때가 오후 5시 쯤, 짧은 겨울 해가 에지워터 허드슨 강 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어지럽게 흐트러진 가게에 혼자 앉아 이것 저것 정리하고 있던 원준이가 그렇지 않아도 작은 실눈을 더 찌그러트려 웃으며 나를 맞는다. 그 날이 그 가게를 정리하는 날이었다. 디지탈 사진과 인터넷으로 더 이상 이런 가게를 유지 할 수 가 없다며 웃는다.
어디선가 전화를 받더니 "내 사진이 한 장 팔렸대" 혼자 중얼 거리듯 내 뱉으며 수줍게 돌아 선다. 만하탄 북쪽에서 열리고 있는 한 전시회에 사진 몇 장 내다 걸었는데 그 중 한 장이 팔렸다는 이야기다. 꼭 남의 이야기하듯 한다. 가게의 벽에는 아직 떼어내지 못한 사진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몇 년 전 전시회에서는 초현실적인 작품들로 좋은 평을 받았다고 메일로 출품작 몇 점을 보여 준 적이 있는데 지금 걸려 있는 사진들은 자신의 얼굴 윤곽에 박제된 생선으로 눈을 가리고 간간이 점자들을 그려 넣은 작품들이다. 점자 시리즈에 몰두해 있었다. 현실을 보지 않겠다는 이야기인지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인지는 묻지 못했다. 사진에 빠져 있는 자네 모습이 좋다며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을 떼어내 내게 준다. "가져가 기념이야" "그래 네 사진도 한 장 찍어 갈란다"
그리고 몇 달 뒤, 암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계속되는 항암치료 과정은 그의 숨겨놓은 불로그를 통해 짐작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 몸 속의 암과 대화하며 놀고 있는 듯이 보였다. 경과가 좋아지는 것 같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부음을 받았다. 착찹하다. 그 실눈으로 웃는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