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관 아저씨가 머리 깎는 의자 팔걸이 위에 기다란 송판을 가로질러 놓고 나를 그 위에 앉으라고 했다. 빨간 글씨로 “이발관”이라 써놓은 그 집은 탑골공원 후문 쪽에 있었는데 그 안에는 하얀색 사기 같은 팔걸이가 있고 의자 옆에 둥근 바퀴가 있는 이발 의자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그 자리 앞마다 세 개의 거울이 있었는데 그 거울은 내 얼굴을 아래위로 움직일 때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 보이는 좁고 어둑한 거울이었다.
소독 냄새나는 그 이발관은 나무 이층집 입구에 있었다. 그 집에는 음식점도 있었고 아래 위층에 간판이 여러 개 달려 있어 마치 요즘 상가 건물 같았다. 그 때 골목 아이들 얘기로는 원래 집주인이 빨갱이였고 인민군과 함께 도망을 가 버린 집이라 진짜 주인이 없다고 했다.
나는 가끔 그 집 의자 위에 송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꺾었는데 어느 날 인가 옆 거울에 비치는 어떤 아저씨의 검은 얼굴과 내 하얀 얼굴을 비교해 보며 언젠가 내 얼굴이 저렇게 변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잊혀지지 않아 나이 들어서도 이발관 거울 속의 비취는 내 얼굴을 보며 몇 번인가 떠 올리기도 했다.
그 때 생각하던 얼굴이 지금 이 얼굴인데 그 날 내 앞 거울에 비쳤던 하얀 그 어린 얼굴이 아직 잊어지지 않는다.
늙어지는 얼굴, 맘에는 맞지 않지만,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그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