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미국의 안성주군이 게재해 줄 것을 부탁해 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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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관아, 네가 벌써 가다니 말도 안된다. 수관아 너는 참 기억에 남는 친구다. 학교 끝나면 집에 가기 싫었는지 항상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곤 했잖아. 그것도 대부분 <똥배> 김종칠이를 모시고. 어떤 때는 홍공명이도, 어떤 때는 송우천이도 들리고 했었어,
성북동에는 특성있는 친구들이 많았었나봐. 그렇지 수관아? 한효석, 신준철, 신강용, 장경순, 김진국 녀석들도 잠깐씩 살았었지 않았니? 너 처럼 토박이는 아니지만... 효석이는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버렸고 준철이는 일찍 사랑에 빠져버렸었지. 강용이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경순이는 플라스틱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거라고 야무진 예측을 하고 진국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만 했었지. 그래서 성북동 컬처하고는 잘 안맞아 같이 안놀았지. 그렇지?
혜화동에서 버스를 탄다고 임정자를 "뻐쓰"라고 이름 지워주고, 버스 값이 없을 때는 패거리로 걸어거다 김종칠, 김진억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 녀석도 같이 끼어주고 함께 걸어 갔었잖아? 패거리로 떠들며....
60년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들 도시락에서 계란만 빼 먹고, 뚝섬 가서는 예쁜 여학생들 무척이나 괴롭히고, 70년도 경찰 되어서는 말썽꾸러기 나쁜 놈들 잘도 잡아낸다고 자랑하더니 80년대엔 내가 미국 손님 데리고 한국가면 김포 공항에서 폼 잡으며 많이 도와주었었지. 몇 년 전 만났을 때에는 공연히 오기에 경찰 집어 치운 것을 후회했었어. 화가 나서 속병까지 들었다고 답답해 했었는데... 벌써 떠나다니.
성북동 아이들은 정말 특색이 있었어. 그렇지, 수관아? 공명이와 우천이는 우이암 타고 종칠이와 경순이는 개똥철학 읊어 대고, 너와 태원이는 해야 될 시험 공부는 안 하고 담배 꽁추 피워 물던 그런 아이들이었어. 참, 박태원이는 왜 성북동에 왔었냐? 네가 데리고 왔지?
그러던 우리들이 이젠 손자 손냐 재롱 보는 "하비", " 하미"가 되었단다. 교회에서 대표 기도하는 장노가 되었단다. 말도 안되, 그렇지 수관아? 어쩌다 눈을 감으면 떠 오르는 풍경, 구름이 놀다 가는 듯이 뒤로 멀리 보이는 북한산, 겨울이면 팽이 돌리고 썰매 타던 얼어 붙은 개천, 꿈에도 그리는 추억의 성북동, 다시 끌어 안아 보고 싶은 우리들의 강산이 아니냐? 어쩌면 눈을 감고도 돌아 가 보고 싶고, 어루만져 보고 싶은 우리들의 고향이 아니냐?
수관아, 그 동안 함께 못 있었던 것 미안하다. 태평양이 넓긴 넒은가 보다
공명아, 내 대신 가족들 위로해 다오.
2009년 7월 10일 안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