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7회 산행기(도봉산)
건대역 앞에서 7호선 전철을 타자마자 완전 등산 모드로 바뀐다.
배낭을 메고 스틱을 든 40대 이상의 아저씨, 아줌마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물병 카바와 요사이 유행하는 반소매 토시를 2천원씩에 파는 아줌마들의 떠드는 소리부터 벌써 등산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틈에 끼여 도봉산 역에서 내려 우선 큰 길부터 건넌다.
길을 건너 우리가 만나는 장소라는 호들이 앞까지 천천히 걷는다.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이다. 분당에서 건대 앞까지의 직행 광역버스가 일요일 아침이라서인지 불과 30분만에 주파를 했기 때문에 30분이라는 시간을 덤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김밥을 겉절이 김치까지 덤으로 얹어 1,000원에 파는 아줌마들, 스틱을 5천원에 파는 등산가게들, 돼지 족발 껍데기를 벗기는 아줌마들, 등산 양말을 만원에 6개씩이나 파는 가게들을 지난다.
생각해 본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몰린다. 도봉산, 북한산, 청계산, 관악산, 수락산, 불암산... 등등. 산들이 몸살을 앓는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들이 앓을 몸살을 대신 좀 앓아 주신다면, 그 정도는 산 님들께서 좀 양해해 주시지 않으려나? 하이드 파크, 센트랄 파크와 같은 넓은 공원, 그리고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골프장 사후관리에 드는 비용 일부분만 산 님들께 할애해 드린다면, 너그러운 산들께서는 오히려 이해해 주시고도 남을 것 같다.
9시 30분경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니 벌써 이상훈 등산회장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주환중과 정기봉은 먼저 산으로 올라 갔다고 한다. 그럼, 나도 먼저 슬슬 올라가 볼까나?
혼자 천천히 오르니 곧바로 光輪寺이다. 조선말기 19세기 초, 강화도령 철종이 일찍 돌아가시고 왕위 결정권을 갖게 되어 고종을 즉위하게 하고 흥선 대원군의 집정을 이루게 햇던 趙大妃가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원하던 곳이다.
이어 10 여분 올랐을까? 그동안 몇 번인가 그냥 지나치던 도봉서원이다. 지난 6월18일 서울시가 시 지정문화재 기념물로 지정예고 햇던 곳이라고 엊그제 신문에 났었기에 오늘은 마음먹고 지나치지 않고 둘른다. 16세기 초 중종때 개혁정치를 하려다 37세의 젊디 젊은 나이에 그 기가 꺾였던 趙光祖 선생을 기려 세운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이라고 한다. 由道門이 굳게 닫혀 있어 선조가 이름을 내리고 영조가 친필로 쓴 賜額현판을 담장 너머로 겨우 사진 찍는다.
서원 옆 그늘진 곳에 잠시 쉬고 있으려니 강기종과 박찬홍 둘이 열심히 올라온다.
금강암과 구봉사를 지나니 바위 위에들 정태영, 김윤종, 정숙자, 이성희, 남영애, 송인식, 우무일, 변병관, 김영길, 김상건, 민일홍이가 땀들을 씻으며 앉아 있다.
지나쳐서 얼마를 오르니 먼저 올랏던 꺽정이가 도사처럼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뒤에 오르고 있던 이재상, 민병훈, 정만호, 신해순, 박효범, 김건택, 이영식과 함께들 병훈이의 위스키, 재상이의 마플주,. 해순이의 체리와 포도, 심항섭의 토마토로 간식을 든다.
우이암 밑으로 돌아 능선 길로 들어서니 바람이 약간 부는듯 마는듯 하다. 엄청 후덥지근한 날씨이다. 그래도 저쪽 너머 빼어난 도봉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느라니 몇 몇 친구들의 소중한 얼굴을 담아야겟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하산길이다. 길이 붐빈다. 일방통행을 하자느니 마느니 하면서 인식이와 찬홍이의 얘기를 듣자보니 멋 없는 도봉사를 지나게 되고 돈들인 흔적이 역력한 능원사를 지난다.
어느 사이에 이상훈이가 지나치려는 우리를 콩사랑 두부집으로 안내한다. 오래간만에 나온 정태영이가 맥주며 소주, 막걸리에 부추전, 두부찌개, 콩국수 등 푸짐한 점심식사를 내어 한바탕 떠들다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