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등 고속버스라는 것이 편하다고 해도 서울에서 완도까지 직행으로 6시간 남짓 길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뱃 길로 50 여분을 더 간 후에야 청산도에 도착했다. 서편제라는 영화에서 5분 넘게 롱테이크로 잡았던 진도 아리랑 장면, 그 장면을 바로 이 섬의 당리라는 곳의 언덕 길에서 찍었다. 벌써 십 오륙년 전의 일이지만 영화 속의 돌무더기 사이로 난 누런 황토 길은 지금도 기억에 각인 되어있다. 영화의 카메라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본다. 영화 속 황토길의 황량함과 빈궁함은 이제 없었다. 더구나 몇 년 후 이 곳에서 '봄의 왈츠' 라는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바로 그 언덕 길 옆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놓고 돌담 길 옆으로 유채를 흐드러지게 심어 놓았다. 서편제의 황량한 황토길이 아니고 봄의 왈츠란 드라마의 아름다운 촬영세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편제의 그 돌무더기 사이의 황토길은 섬 곳 곳에 아직 남아 있다. 척박한 땅을 골라 한 뼘의 밭이 라도 더 얻기 위해 골라낸 돌들이 마을 뒤 언덕 위까지 올라가며 쌓여 자연스레 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과 영화의 배경인 60년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 흔적들은 섬 곳 곳에 숨어있다. 오히려 남아 있는 그런 흔적들이 앞으로 이 외딴 섬의 큰 재산이 될 것 같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다.
지난 주 이 섬에서 슬로시티 체험행사가 열렸다고한다. 이 섬은 모둔 것이 느리고 조용했다. 항구에 도착해서 떠나기 전 인터넷을 통해 연필 굴려서 답을 찾는 기분으로 골라잡은 민박집으로 전화를 했다.
"도청항인데 어떻게 가면 됩니까?"
"운동삼아 바닷길 따라 쭉 걸어 오씨오"
10분이면 올 수 있을거라는 거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물이 빠진 바닷길을 따라 30여분을 족히걸었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마늘 밭에 간혹 할머니 한 두분이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고 있을 뿐, 집 마다 대문은 열려 있고 개 짖는 소리도 없이 마을은 조용하다.
인적 없는 당리 언덕 위에서 미적대다가 기우는 해를 보며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항구 쪽으로 나가 저녁을 해결할까 하는데 민박집 할머니가 이곳은 전복이 유명한 곳이니 나가서 전복만 조금 사오라 하신다. 멀리 등대 옆 섬 넘어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전복을 샀다. 푸짐하다. 섬에서 하나 뿐인 농협마트에 들려 번개탄과 숯도 사고 6남매 모두를 육지로 보내고 '아자씨'도 3년 전에 세상 보내 버린 후 술을 낙으로 사신다는 할머니를 위해 소주도 몇 병 샀다. 할머니가 준비해 놓은 밥과 된장찌게 그리고 마당에서 구어내는 전복구이가 진수 성찬이다. 남은 전복으로는 내일 아침 찹쌀로 전복죽을 써 주시겠단다. 하늘에 유난히 별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