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심을 보여 줘서 고맙네
지난 6월 몽고 의료봉사 갔을 때 만난 어린이들인데 그 애처러운 모습을 보면 결코 외면하고 돌아설 수 없었다네
우리도 과거에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
지금까지 우리들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우리의 재능을 돌려 줄 일만 남은 것 같다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삶의 의미같아서 일간지에 기고하고 있는 글을 같이 실을려고 하는데 예쁘게 봐 주게
자주 연락을 못하고 가끔 친구들 기억하지 못한 실수를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길 바라네
그래도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교시절과 16회 고교동창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네
자주 연락하자.
행복 교실
2008년 7월 2일 경상일보
우리는 신의 섭리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인생의 잣대는 물론이고 연습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잘 잘못을 안고 일방통행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때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불나방이 마냥 마구 방황하다가 불에 거슬려 상처를 입거나 생명을 잃기도 한다 .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
많은 선각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행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행복은 무형이라 주관에 따라 각자의 해석이 다르며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길이 열려 있다. 인생의 비극은 생명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모르고 살다가 늦게서야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가시적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돈, 지위나 권력같은 한정된 외형적 자원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하여 속도전과 경쟁력에 생명을 걸고 다투다가 성취해 보지만 결과는 불완전한 행복과 무의미한 결과만을 걸머쥐고 허탈해 빠지곤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선상에서 어느 쪽에 인생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인간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과거의 추억에 매달려 헤여나오지 못하는 허무주의자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 젊은이에게 자주 보는 쾌락주의자는 현실적 쾌락에만 탐닉하여 고통을 참지 못하며 불확실한 미래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고 오직 현재에만 만족하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성취주의자는 지금의 자신을 극도로 억제하여 미래에 소원성취만 이뤄지면 행복해 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현재를 저당 잡히고 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와 즐거움을 앗아간 대상을 원망하게 된다. 기러기 아빠같이 1세 성취주의의 희생이 2세에게는 쾌락주의를 조장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지향은 인생의 목표인 삶의 의미를 향하여 긍정적인 마음에 일하는 즐거움을 더하여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 사는 것이라고 한다.
국민소득이 이만불을 넘어 기본적 의.식.주가 해결된다면 돈은 더 이상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원시 수렵채취시대부터 유사시에 대응하여 부와 식량을 축적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측정할 수 없는 감정이나 의미보다는 측정 가능한 물질적 부나 권력에 보다 큰 가치를 둔다. 물론 이것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질 때는 바람직하지만 많은 경우에서는 탐욕과 근심이 동반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호스피스에 의하면 많은 임종자들이 삶의 끝자락에서 이웃과 더불어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지 못 한 것을 가장 아쉬워한다.
행복이란 개체간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계량화 하기도 곤란하지만 일반적으로 행복지수는 유전적 영향 50%, 환경 10%, 후천적 활동이 40%로 되어 있다고 한다. 불행과 친구가 아니라면 학습여하에 따라 행복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기일치적으로 자기 능력에 따라 가장 원하는 삶의 의미를 향하여 오늘도 즐겁게 일하는 것이 행복의 길이며 나아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면 행복은 우리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즉 여행의 목적지도 좋지만 그 과정이 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외형적 물질에 치중하여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삐에로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물질숭배자는 자기 소유물의 관리자로 전락하여 별로 쓸데없는 물건을 집안에 쌓아 두려고 돈을 벌기 위하여 뼈빠지게 일하면서 인생이 고달프다고 한탄한다.
인간은 생리적, 감각적 변화에 따른 "쾌락적응"에 빠르게 익숙해짐으로써 짧은 쾌감이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를 황홀케 한 자극도 3개월이 지나면 흥미를 잃는다. 일부 부모들은 자식의 고생이 애처롭다고 과보호하여 꽃화분 마냥 키우는 모습을 보면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행복이 들어갈 문을 걸어 잠그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마음에 뿌리내린 잡초를 제거하는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고는 의미와 즐거움의 행복은 거저 자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