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많이 짧아졌다. 5시인데도 아직 캄캄하다. 일어나 보니 맨자리 바닥이다. 어제는 요도 깔지 않은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어제 밤 9시 TV에 눈을 맟춘 채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흐르는 말복날 더위가 기승이다. 뇌성벽력과 세찬 바람이 폭우성 소나기를 몰고 와 대지를 식혀 주었다. 베이징 올림픽경기장 개막식 중계를 보여주던 TV도 뇌성에 놀라 잠시 멈추었다. 슬리퍼에 우산을 펴들고 성내천에 내려가니 우수구로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가 장관이다. 서쪽 하늘은 새카만데 동쪽 하늘에는 별이 보인다. 물새 한마리가 어둠속에 수초사이로 다니며 사냥을 한다.
잠자는 아내를 깨워 우유에 바나나와 밭에서 뽑아온 비트 그리고, 마를 넣어 믹서로 믹스한 보라빛 음료를 한컵 시원하게 마시고 나니 환하게 동이 튼다. 서둘러 아내와 미사리 주말농장으로 향한다. 며칠 맑은 하늘에 옥수수가 많이 여물은 듯 아내가 잘 여문 것으로 마대자루에 가득히 따 담는 사이 울타리를 덮어오는 일명 '며느리 밑씻개'라는 고얀 이름을 가진 넝쿨성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호박넝쿨사이를 비집어 본다.
고구마밭에는 밤고구마 400순, 호박고구마 200순, 자색고구마 200순이 심어져 덩굴이 서로 뒤엉켜 발 들여놓을 틈이 없다. 연말까지 차례로 캐서 얼마나 맛있는 고구마가 달릴 지 맛을 볼 것이다. 원래 고구마는 황토밭에 심는 것이 맛도 촣고 품질도 좋다는데 여기는 순 모래밭이어서 결과가 의심스럽다.
무성하게 어울어진 마밭 김을 매주고, 간이 온상에 심어놓은 상치와 열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나니 아내가 빨리 집에 돌아가잔다. 잘 익은 토마토 한개를 따서 입에 넣으니 상큼하다. 집에 돌아오니 7시가 훨 지나 있다.
밥상을 차리고 옥수수를 찌는 동안 성내천 연못으로 수련과 연꽃을 관상하러 나간다. 순백색, 보라색, 미색 꽃이 활짝 피어 반긴다. 꽃 사이로는 치어들이 떼지어 노니는 것이 힘차 보인다. 어젯밤 요란을 떨던 우수로는 말끔하게 말라 언제 급류를 흘려보냈느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