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진달래가 영산홍과 철쭉과 바통터치 하여 산들이 새 단장을 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약간 흐린 날씨지만 낮에는 개인다는 일기 예보를 믿고 서둘러 나섰다. 지하철을 타는데 옆에서 이재상이 손짓한다. 멀리서 나보다 35분이나 일찍 출발했단다.
양재역에서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내리는데 주환중과 변병관이 악수를 청한다. 넷은 곧 역을 빠져 나오는데 이상훈, 송인식이 미국에서 며칠 전에 온 최진석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두 명을 제외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처음 보는 노선 버스가 선다. 여기서 출발하는 빈 차 타기는 생전 처음이다. 이게 웬 떡? 로또 당첨된 것처럼 기쁘게 반색을 하며 이재상이 1착, 다음으로 내가 타고, 이어 우르르 우리 동문들이 오르는데 이성희도 앞쪽 자리에 앉는다.
늘 초만원에 시달리며 갔는데 오늘 출발이 상쾌하니 오늘 산행도 늘 그랬듯이 유쾌 통쾌 상쾌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원터골 대주차장에서 정시에 출발한다. 여학생 4명, 남학생 16명. 여학생들 성적이 부진하다. 해외여행 중인 친구, 바쁜 일로 못 온다고 예고한 친구, 그리고 가족들과 가는 봄이 아쉬워 나들이 간 친구 등등.
권영직 회장은 오늘은 완전 자유 산행이니 코스와 목적지를 각자 실력대로 올라갔다가 12시 30분에 지정 식당으로 모이기만 하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출발은 같이 삼삼오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뭉쳐 간다.
이제까지 청계산에 수십 번 올랐지만 오늘 코스는 초행이다. 원터골 약수터 방향이 아니고 곁길이다. 새로 지은 듯한
天開寺 앞길에서 선홍색의 영산홍과 진분홍 철쭉을 만나 잠시 마음을 빼앗겨 본다. 가지마다 새로 솟은 순들이 연두색으로 받쳐주니 3색의 꽃동산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잠시 여학생만 꽃 속에서 추억 만들기 사진을 찰칵.
전날 내린 비로 땅은 촉촉이 젖어 있다. 먼지가 일지 않고, 길은 사뭇 평탄하다. 계단이 비교적 적고, 가파르지는 않은 길이지만 조금 더 가니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이 많아 꽤나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회장은 어느 지점에서 나에게 “이쪽 우측으로 가면 옥녀봉 가는 길이니 가라.”고 한다. 나는 힘들지는 않았지만, 길이 점점 미끄러워져서 정상은 못 가지만 헬기장 전 팔각정까지 가겠다고 대답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최진석은 초반에는 잘 걸었으나 점점 힘들어하더니 혼자 쉬다가 내려가겠다며 포기하려한다. 최근 심근경색으로 수술 받고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단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온 그는 동기회 산행에 참여한 것이 이번이 다섯 번째. 평상시에 미국에서도 우리 홈페이지를 자주 접속하면서 동기회 행사를 기억했다가 출장 올 때는 친구들 모이는 날에 맞춘다고 친구들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표한다. 그는 또 전날 기우회 모임에도 참석했다. 이날 16회는 18회와 각각 5명의 선수가 대국을 했는데 최진석은 윤상진과 함께 후배를 물리쳤지만 아깝게도 다른 3명이 패한 탓으로 아쉽게 빛을 잃었다.
풋풋한 나무 잎새의 향기 속에 파릇파릇 솟아나는 연초록 빛깔들의 나무들이 이룬 터널을 뚫고 오직 빈 마음,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지면서 걷고 또 걸으니 어느 새 팔각정에 이르렀다. 저마다 영양 고추, 김밥, 방울토마토, 그리고 포도 등 간식꺼리를 펼친다.
그런데 으~잉? 최진석이 산신령 같은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나타난다. 식당으로 가지 않고 두 번 쉬면서 기어이 왔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걱정하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쉬는 사이 어이없게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일기 예보는 오늘도 틀렸다. 雨無日이 왔는데도 비가 오다니 우무일 기도 약발이 떨어졌나? 성희와 남학생 절반 정도는 매봉으로 가서 성희가 담가온 진달래술로 져버린 진달래향을 추억하고, 나머지 우리는 그 옆길로 하산을 하기로 했다.
찬바람에 손이 시리고 떨면서 내려오는데 빗방울은 점점 거세진다. 나는 얇게 옷을 입은 까닭에 너무 추워서 움직여야 덜 추울 것 같아 혼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가다보니 남영애가 숨 가쁘게 뒤쫓아 와서 우산을 씌워준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곱기도 하지. 영애와 한 우산 속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내려온다. 내려가는 길은 세찬 빗줄기로 인해 더 미끄럽지만 조심하면서 금세 원터골 약수터 쪽으로 내려왔다.
원래 예정은 진달래 길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었는데 지름길로 하산하느라고 진달래 구경은 못해 아쉽다. 그러나 이솝우화 속의 여우가 높이 있어서 따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바라보며 “저 포도는 시다.”고 자신을 위로했듯이 나도 “진달래는 다 졌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꽃이 지누나 /봄이 무거워 꽃이 지누나. 조병화의 시 <편편화심>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이 무거워 내 마음만 두고 진달래는 다 졌을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니 백발의 위광우가 늦게 출발했다가 서둘러 하산했다며 반긴다. 왕년의 회장 아니랄까봐 잽싸게 정상에 다녀왔구나.
식당 보릿골에 들어가서 자리 잡는데 황정환이 뒤늦게 나타난다. 언제 봐도 말끔한 신사. 오늘은 이발까지 했다며 여학생들이 반색한다.
이어 분당팀 지각생 김두경 강기종도 들어서고 총 23명이 모였다. “나이야 가라” 소리 높여 건배를 하고 무사 산행을 자축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이름과 비슷한 발음의 나이야가라는 베트남 여행에서 배운 버전이라고 정애가 설명. 기름기 없는 담백한 돼지 목살을 철판에서 구우며 먹는 동안 누구는 누구 오빠지만 나는 누구 애인이라며 작업을 거는 모씨,
수수께끼로 문제 <설왕설래>는? 이 출제된다. 답은 <키스>란다. 그럼 뽀뽀는 ? 답은 주둥이 박치기. 민병훈이 미국 벼룩 여행기를 들려주고, 웃는 동안 철판 위에서는 담백한 맛의 돼지 목살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백세주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해물파전, 돼지목살을 포식한 후 식당 앞에서 청계산을 배경으로 또 기념사진 한 장 박는다. 서둘러 박고, 대부분 선양 당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행에서 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가 회식인데 오늘은 완전히 봉사자의 적자였다. 하지만 적자와 무관하게 애써준 산행봉사자 감사합니다.
참가자 : 이재상, 민병훈, 황정환, 이성희, 박상규, 최진석, 이향숙, 박정애, 남영애, 정태영, 우무일, 송인식, 정기봉,
권영직, 주환중, 변병관, 김진국, 박효범, 민일홍, 위광우, 이상훈, 강기종, 김두경, 2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