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 16 편집장 사퇴 신고합니다.
지난 3월초에 선농 16 신문 편집장을 사퇴했는데 아직도 여러 동문들이 모르고, 혼동하는 듯 물어오기에 늦었지만 이제 신고합니다.
지난 2000년 5월 20일, 우리 홈피가 개설된 바로 그날, 당시 회장의 전화 부탁을 받고 남은 날을 동문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수락하고, 만 4년간 편집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홈피의 폭발적 인기에 밀리고, 설상가상 능력도 없이 만든 선농 16이 "재미 없어 아무도 안 읽는다." "받으면 봉투도 안 뜯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는 등 갖가지 악평을 들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창간호부터 22년간 인쇄를 맡아온 박영섭 동문과 함께 신문 제작에서 손을 떼고 장재원 유병렬 동문이 새로운 팀이 되어 이미 4월호부터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재야에서 쥐 죽은 듯 근신하면서 지내려합니다.
나 때문에 흙탕물 쓰고 퇴진하면서 마음 상한 박영섭 동문을 비롯해서 그 동안 내가 만든 신문을 애독하고 도와준 많은 동문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 못한 점 크게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3월초에 선농 16 신문 편집장을 사퇴했는데 아직도 여러 동문들이 모르고, 혼동하는 듯 물어오기에 늦었지만 이제 신고합니다.
지난 2000년 5월 20일, 우리 홈피가 개설된 바로 그날, 당시 회장의 전화 부탁을 받고 남은 날을 동문들에게 봉사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 수락하고, 만 4년간 편집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홈피의 폭발적 인기에 밀리고, 설상가상 능력도 없이 만든 선농 16이 "재미 없어 아무도 안 읽는다." "받으면 봉투도 안 뜯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는 등 갖가지 악평을 들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창간호부터 22년간 인쇄를 맡아온 박영섭 동문과 함께 신문 제작에서 손을 떼고 장재원 유병렬 동문이 새로운 팀이 되어 이미 4월호부터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재야에서 쥐 죽은 듯 근신하면서 지내려합니다.
나 때문에 흙탕물 쓰고 퇴진하면서 마음 상한 박영섭 동문을 비롯해서 그 동안 내가 만든 신문을 애독하고 도와준 많은 동문들에게 깊이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 못한 점 크게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박영섭 동문도 그간 수고 많이 한것 모두 알고 있고요...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제아무리 조중동이 좋은 글을 많이 실어도, 오마이나
한아무게 신문이 요즘 젊은이에게는 더 다가온다 그렇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