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날씨에는 알면서도 속는다. 사방에서 꽃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개나리, 진달래, 목련에 속아 가벼운 옷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7호선 종점 온수 역에 내려 서울 럭비 전용구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제법 차다. 춥다. 떨게 생겼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랜만에 럭비 구경 나온 친구들 복장이 모두 그렇다. 떨게 생겼다. 봄 날씨에 속은거다.
김풍자, 주현길이 일찌감치 나와 자리를 잡았고 김성광, 주환중 두 터주 대감, 그리고 우리 동기들을 오늘 시합에 초대한 정태영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모교 연대 럭비부에 올 해 다섯명의 부고 후배들을 새내기로 맞게 된 이영식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타나고 뒤 미쳐 이상훈과 민일홍까지 합류해서 나 까지 모두 9명의 동기들이 모인 셈이다. 한우택 선생님이 본부석에 자리 잡고 앉으셨다. 정정하고 단아한 모습이 반갑다.
춘계 대회 준준결승, 시합이 곧 시작 되겠는데 성광이와 환중이의 얼굴이 밝지 못하다. 동계 훈련 중에 주전 급 중심 선수가 네 명이나 부상으로 오늘 시합에 결장이란다. 힘 쓰는 녀석들이 모두 빠졌으니 오늘 플레이는 뛰는 게임을 해야 하는데 그라운드가 뻘 밭이다. 시합은 시작 되었고 이 두 전문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분패다. 나중에 럭비 선수 출신이고 지금 부중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17회 유 교장에게 들은 얘기인데 천하부고 럭비 팀이 그 해 최강팀으로 알려지면 춘계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했다. 올 해 최강 팀으로 꼽히는 이번 팀도 그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이 징크스를 깨고 춘계 대회를 포함해 그 해 전 대회 전승을 한 유일한 팀이 바로 우리 16회란다. 새삼 자랑스럽다.
그래도 진흙 밭에 몸을 던지며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참 싱그럽다. 모두 잘 생겼다.
(사이트 개편으로 사진이 두 장 씩 밖에는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나머지 사진은 앨범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