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회장을 맡은 후부터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그저 소심한 탓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책임감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 동안엔 집안 처자식 주변을 맴돌던 생각의 둘레가 갑자기 넓어진 것이다.
지난 연말총회 때는 오랜만에 마이크 들고 한마디 해야겠기에 그 생각에 매이기도 했고 또 신문에 올릴 취임사 원고를 얼굴사진과 함께 보내라는 선농 편집인 이향숙씨의 명을 받들기 위해 몇 자 안되는 글에 고민을 하기도 했다.
동기생들 쪽에서야 나보고 회장하라고 가볍게 권했을지라도 (아니겠지만)
그 옛날 사대부고를 다니고
그 후 거친 세상 반세기를 무난히 살아와
운 좋아야 일년동안 할 수 있는 것이 동기회장 이라면
어찌 소홀 할 수야 있겠는가.
동기들 앞에서 겸손하게 두 손 모아 일년 열심히 봉사 하겠습니다 했지만
그래도 오늘 선농 신문받아
그 일면에 보니
뽀샵을 잘해서 올린 얼굴 사진이 그저 괜찮고
내가 쓴 글이지만 한두번 읽어보니 기분이 업이다. ㅎㅎ
(흉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짜 내가 달라진 건 그게 아니다.
전에는 선농 신문을 받아들면 별 생각 없이 훑어보는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꼼꼼히 읽어보고 신문 전체의 포멧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이제야
4면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글자수를 맞춰 타이핑을 하고
둘째 면은 친구들 근황을 재미있게 작문을 하고
삼사면을 채우기 위해서는
원고 독촉도 해야 하는 편집인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된다.
.
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라는
멋있는 뜻이겠지만
그러나 우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기 보다는
늘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쉽게 주장하며 살고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