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한국 100대 명산에서 서른번째인 소요산이다.
가까운 동두천시와 포천군에 연해 있는 산이다. 봄의 진달래, 철쭉을 비롯해 사시 사철 특색이 있고 특히 가을 단풍이 일품인 이 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우며 단거리 관광코스로도 아주 인기이다.
2005년 5월 22일에도 당시 산악회장인 정태영의 기획으로 버스를 대절하여 다녀 왔었고 심항섭 사관이 당시 산행기를 절절하게 썼던 산이다. (자유 게시판 1322번 참조)
이번엔 경비도 절약할 겸, 전철역인 소요산 역으로 집결하라는 권영직 회장의 전갈이 있었다. 시간 맞추어 소요산 행 전철을 타니 사람들이 꽤 많다. 거의 등산객인데 도봉산, 북한산 쪽으로 내리는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거의 만원인 상태로 종점에 도착하니 우무일이가 반기며 길 건너 편으로 모이라고 안내한다.
그런데 등산객이 어찌나 많은지 저절로 떠밀려 나간다. 이건 마치 소요산이 아니라 소요 스타디움이다. 프로 운동 경기 결승전 관람객들 밀리는 것 같다. 건너편에 김두경, 김윤종이 일찍 와있고 유정숙이 와서 어제 있었던 사돈의 혼사 얘기를 한다. 정태영도 미리 와있고 이향숙, 이성희도 도착한다. 오랜만에 이명원이 나타나니 이석영이도 나도 오랜만이야다. 정만호도 가뿐히 오고 박효범, 변병관, 그리고 이상훈은 목이 쉰 허스키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민일홍, 권영직, 김상건이 잇따라 모여 인사들을 한다. 그 많은 인파들 속에서 출발할까 하니 유정순과 정기봉이도 온다 한다. 그러면 오늘 전부 19명이구먼.
그래서 태영, 향숙, 정숙 등이 남아 마저 기다리고 선발진은 출발, 10시 35분경.
수 많은 울긋불긋의 등산객들 틈에 떠밀려 올라가다 인원 점검 차 대형 주차장 끝에 모이니 10회 선배들도 오늘 소요산 산행을 하신댄다. 아는 진명식, 김태무 선배들께 인사하니 아직 씽씽하다. 우리도 육년 후에 최소한도 저 정도 이상으로 건강했으면...
오늘 특히 북적이는 것은 어제 오늘 단풍 축제와 성이 설씨인 원효 대사가 김춘추의 둘째 누이인 미망인 요석 공주와의 썸씽으로 설총이 태어난 후 도를 닦고 선덕 여왕때 창건했다는 자재암의 또 다른 상량식까지 겹친 것이다.
그리고 산 이름은 화담 서경덕과 봉래 양사원,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파다한데, 박학다식한 한동건이는 노자의 유유자적한 소유에서 나왔다고 일전에 어떤 술자리에서 피력한다.
더 올라가니 매표소. 여기도 긴 줄들을 서고 일인당 이천원씩 입장료를 받는다. 절 입장료란다. 많은 사람들이 궁시렁 거리나 에누리 없다. 민일홍이만 Free Pass. !
쭉 올라 일주문을 지나 원효 폭포를 스쳐 구절터 근방에서 방향을 잡는다. 요석공주를 그리어 공주봉이라고 칭하는 봉우리 및 최정상인 의상대 등 여섯개의 봉우리 중 의상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사람들이 한결 덜 북적이는 왼쪽 길로 오르니 한적해서 좋고 울긋 불긋 단풍이 한참이라 마치 거대한 자수를 놓아 그 속에 우리가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아쉬운건 우리의 전문 찰칵사인 동건이나 항섭이가 있었으면 눈들이 아주 즐거웠을텐데 무척이나 답답하게 됐다. 그러나 실제는 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상상 하면 틀림 없다.
이 산은 어느 코스나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그러나 위를 보면 그 절경에 불만이 쏙 들어가나 발 밑은 돌맹이 투성이 산이다. 다 좋을 수는 없겠지...
쉬엄쉬엄 올라가는 데 행복 끝. 사람들이 밀리면서 암벽 등반이 시작이다. 나와 이석영이는 꼬망지로 안간힘 쓰며 기어오르는 데 만물상 같은 기암들을 두 무더기나 올랐는데 권회장이 전화다. 힘드니까 도로 내려갈 수 있으면 내려가란다. 허나 여기까지의 고생이 너무 아깝고 이 외길에서 밀려오는 인파에 내려 갈 수도 없어 진퇴 양난이다. 한두번만 고생하면 되겠지 하며 계속 가는데 왠걸 하나 오르면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오죽하면 어떤 아줌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그러나 우리의 석영이는 산전수전 겪은 노장답게 차근차근히 기를 쓴다. 기암절벽의 만물상은 멀리 볼 때나 좋지 그걸 하나하나 기어 오르려면 죽을 맛이다. 우리는 안깐 힘을 다해 지옥 같은 일곱개의 암벽 고행을 이겨내고 의상대에 오르니 우리가 갔던 코스는 밧줄로 막아 놓은 폐쇄길이었다. 우리 둘의 안전에 맘 졸이던 권회장 수시로 전화 확인에 또 기다려주며 이끄는데 배테랑 산꾼들은 몽땅 내뺐나 보다.
거기에 나는 공주봉 쪽으로 해발 삼십 미터 쯤 갔는데 또 전화
" 왜 그리 가니? 나한대 쪽으로 가는게 빠른데"
다리는 후들 후들 힘은 쪽 빠졌는데 또 헛걸음탕.
나한대에 다다르니 선발팀들이 기다린다. 그전에 오늘은 여러팀으로 갈라져 갔다.
제일 조금 걸은 팀 : 정태영, 유정숙, 유정순, 이향숙 - 자재암을 들려 합장하고 약간 더 걸은 후 정시에 식당으로 직행.
그 다음 걸은 팀 : 김윤종, 김두경, 우무일, 변병관 - 정상 코스로 백운대 쪽으로 갔다가 오니 정시보다 15분 늦게 도착, 양호한팀. 여기에 정기봉도 가세.
그리고 제일 고생 짖하게 한 팀이 본대인데, 그중 상훈이는 의상대에서 공주봉으로 혼자 돌아 먼저 왔다.그래도 고생 많이한 팀은 나한대 밑에서 마지막 남은 매실주와 엊그제 내가 식구들과 유민성의 설매재에서 일박하며 따온 생생한 표고 버섯 부침으로 기분전환.
잠깐, 설매재 얘기를 조금 하자면 40여년 전 민성이 대학 1년때 헐벗은 민둥산에 직접 호루라기 불며 심었던 나무들이 자라고 자라 이젠 어였한 자연 휴양림이 된 것이다. 면적은 여의도 만하고, 우리는 체육대회 한다고 낮에만 있다 와서 제대로 만끽을 못 했었는데 일내지 이박이라도 하면 그 시원한 공기와 분위기 그리고 잘된 난방에 그리고 넓은 수풀 속의 바베큐하며 낭만이 그만 최고라.
민성이는 아예 그 옆에 전원 주택을 잘 짓고 (건평이 한 90평은 될기라) 외국 별장처럼 꾸며서 좋은 공기 마시고 잘 살고 있더라.
마침 다음날이 억새 축제라서 우리 식구들은 아침 대접을 잘 받은 후 그 으악새 슬피우는 곳을 살짝 먼저 가 보았지.
친구라고 에누리까지 왕창 해주고도 식사 대접까지 잘 받아서 오랜만에 식구들에게 면이 섰었지.
그리고 어제도 계양산을 다녀 왔으니 오늘의 고행은 내겐 초죽음 직전 이었었다.
다시 소요산 하산길. 계속 가파른 내리막 돌맹이길을 아주 조심하며 내려가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보면 색색들이 단풍들이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아까 올라올땐 낙엽들이 흩날리다 못해 마치 낙엽비처럼 쏟는 게 지금 생각하니 위로해 주는 것이었던 것 같다.
끝없이 계속 내려오다 선녀탕을 지나 자재암으로 드디어 도착. 자연 석굴인 나한전을 기웃하니 그 옆의 샘물은 원효샘이라나
그래서 식당에 도착한게 15시 30분(아까 13시까지 모이라고 했는데)
김윤종과 김두경은 회비를 배로 내고 먼저 갔다 하고 정태영, 변병관 정기봉 이상훈만 남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의리의 삼총사와 달타냥.
남겨 논 음식을 잘 먹기 시작하는데
악! 한통의 전화.
16회 제일의 젠틀맨, 박영준의 비보. 비보. 쿵!!!! 항상 잔잔한 미소 속에 존중과 배려를 품고 살던 그래서 더 여유로웠던 그 영준! 보름전 딸내미 결혼식장에 안보여도 잘 치료 받고 있겠지하고 있었는데...
좌우간 명복을 빌고 빌지만 더도 먹고 싶지도 않아 일어섰다.
하늘도 슬픈지 밖에는 추적 추적 비 까지 뿌리고 하니 그냥 갈 수도 없고 한 참에 또 하나의 젠틀맨 상건이가 이 동네를 떠나서 쏘겠단다.
그래서 선약이 있는 태영과 석영인 헤어지고 의정부에서 돼지갈비등으로 일배 또 일배.
그리고 울적함을 달래자고 또 발동. 이번엔 내가 .
도중에 어제 혼사를 치른 수관에게 전화 "야, 어제 피치 못할 일로 참석 못해 미안하다. 나와라! " 오늘만 봐 달란다. 아주 피곤하단다. 지가 시집갔나? 왜 피곤해!
여기서 영직과 만호를 떨구고 나머지 또 종로 5가. 전철은 잘도 간다.
몇 집 기웃하다가 순두부 집에서 마무리.
더 재미있고 깔깔대는 걸 쓰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영준이 애도기간이라 소침해져서 이만 써야겠다.
다시 명복을 빈다.
영준의 명복을 빌고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