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시절쯤이다.
등교 길에 골목 끝 방앗간 집 대문 앞에 서서 친구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칠성아~~, 학교가자”
이 녀석은 뚱뚱했던 기억이고 꿈지럭거렸던 것 같다. 한참을 부르면 그 집 어른들이 칠성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눈곱도 안 띤 칠성이의 부스스한 얼굴 반쪽이 희죽 웃는다.
그 집 앞에 앉아 자동차 지나가는 것도 쳐다보고 딱지도 접고 구슬도 꺼내 세어보며 한참을 기다렸겠지만 깡통을 차며 히히거리고 오가는 그와의 등하교 길은 좋았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골목에는 초등학교 또래의 아이들이 가득했다. 저녁에는 골목 안과 끝에 있는 전신주 두 개를 중심으로 십여 명이 넘는 동내 아이들이 편을 갈러 뛰어 놀기도 했고 다른 동내와 싸움을 해야 한다고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누구의 제안이 이었던지 동내 아이들은 우르르 전차를 타고 지금 왕십리 근처의 뚝섬이라는 유원지로 몰려갔고 바지는 강변 모래사장에 벗어놓고 물속에 뛰어들어 물싸움도 하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누가 인솔을 한 것도 아니고 인원 파악을 한 것도 물론 아니다. 전차를 타는 차비도 필요 없던 악동들의 시절이니 우르르 몰려가 놀다가 배고파져 하나 둘씩 짝지어 돌아온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학교 갔다 오면 아이들은 의래 자기들끼리 골목에서 놀다가 저녁 먹을 때쯤에 “누구야, 밥 먹어라” 하고 어른들의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더 놀겠다는 아이 등 떠밀고 집에 가는 어머니들 모습도 흔했는데 그날 밤에 칠성이는 부모가 뚝섬 파출소를 찾아 가서야 찾을 수 있었다. 익사체로.
그 다음 날 아침 칠성이 어머니의 엉엉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참 낯설기만 했다. 그것이 아는 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첫 번째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누가 그를 기억할지 모르나 칠성이의 명복을 빈다.
추신 ;
올 여름이 시작되던 한 스무날 전 쯤 산길을 걷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옛일이 우연히 생각나 대학 동문 사이트(마스터 전행선)에 이 글을 올린 후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 보게 되더이다. 덕분에 하루하루 잘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