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을 갖고 읽어 볼만한 글 (퍼온글-게시자의 생각과 전혀 상관 없음을 보장함)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잠23:9)
요즘 서점가에 때 아닌 남한산성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가가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교보문고에서는 1위를 차지했는데요.
실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상위권에 오른 것이
작년 하반기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후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소설은 독자들에게 외면을 당하거든요.
그럼에도 거의 돌풍이라 할 정도로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에서
최상위 베스트셀러로 올라선 것은 작가의 탄탄한 능력 외에
FTA협상 등 시대적인 상황도 도움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1636년 겨울, 47일간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청나라 칸이 말합니다.
“네가 명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고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너희가 유신들을 길러서 그 뜻이 개결하고 몸이 청아하고
말이 준절하다 하나 너희가 벼루로 성을 쌓고 붓으로 창을 삼아
내 군마를 막으려 하느냐?”
조선 조정은 생각합니다.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김상헌이 말합니다.
“적이 비록 성을 에워쌌다 하나 아직도 고을마다 백성들이
살아있고, 또 의지할 만한 성벽이 있으며,
전하의 군병들이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으니
어찌 회복할 길이 없겠습니까?
전하, 명길을 멀리 내치시고 근본에 기대어 살길을 열어가소서.....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이 답한다.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이제 적들이 성벽을 넘어 들어오면 세상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온데,
상헌이 말하는 근본은 태평한 세월의 것이옵니다.
세상이 모두 불타고 무너진 풀밭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터인데,
그 꽃은 반드시 상헌의 넔일 것이옵니다.
‘상헌은 과연 백이이오나,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다시 김상헌이 말한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다시 최명길이 말한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서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그러나 소설은 종래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말을 글로 풀고, 고뇌를 꾹꾹 눌러 나아갈 길을 암시하는
작가적 소임을 내려놓은 김훈은 조용히 물음을 계속할 따름입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의 유려한 문체는 오히려 생각을 집중시키지 못하더군요.
글쎄요. 저번에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레오니다스왕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요.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지, 살아서 더러울 것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이 경우에는 판단이 잘 되지 않더군요.
다만 제가 어린 시절 선생님들은 주화를 주장했던 최명길은
천하의 역적이며, 척화를 주장했던 김상헌은 만고의 충신이라고 했거든요.
또 지금까지 그렇게 알아왔는데......
이 당시 벌어졌던 역사를 잠깐 되짚어 봅니다.
이 글은 제가 ‘전쟁과 기상’에서 잠깐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내몽고를 통일한 후금의 태종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면서 자신을 황제로 칭합니다.
그는 1636년 사신 용골대를 조선에 보내 군신관계를 맺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지요.
그러나 국제정세에도 무지했고 명에 대한 사대사상에 사로잡혔던
조선의 인조는 용골대를 상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청태종은 1637년 1월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넙니다.
본래 이들은 기마 민족으로 기동력이 뛰어나며 추위에 대한
적응도가 매우 높으므로 한겨울에 침공을 단행한 것이지요.
청의 선봉대는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피해 서울로 직행합니다.
그들은 마치 날아가는 화살처럼 9일에는 압록강을
14일에는 개성을 통과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조정이 청나라의 침입을 알았던 날은 13일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왕자와 비빈, 그리고 남녀 귀족들을 급히 강화도로 피난시키고 난 후
인조도 뒤따라 강화도로 가려 했으나,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은 막혀 있었습니다.
겨우 남한산성으로 피할 수 있었던 인조는
그 곳에서 8도에 근왕병을 모집하는 격문을 보내고
쇠약해져 가는 명나라에 지원을 요청하였지요.
그러나 구원군들은 도처에서 청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성안의 1만 3천명의 병력은 18배의 병력에 포위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포위 된지 45일이 지나자 식량은 떨어졌고,
유달리 눈이 많고 추웠던 그 해는 겨울이 기승을 부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매일 수백 명씩 죽어나갔지요.
이런 상황에서 강화도까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결국 인조는 항복을 결정합니다.
1637년 정월 30일 인조는 성문을 열고 왕세자와 함께
삼전도에 나아가 수항단(受降壇)에서 청태종을 향하여 치욕스런
삼궤구고두(세 번 절을 하는데 절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세 번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의식)의
항복을 하게 됩니다.
이때 남한산성안에 있었던 47일간의 이야기가 소설 ‘남한산성’입니다.
주전파가 옳은지, 주화파가 옳은지 참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지혜가 없는 자는 그 미련함으로 망한다고 잠언에 나오는 것처럼
싸울 힘도, 능력도, 정보력도 없는 상태에서 싸우겠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은 미련한 짓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부녀자들이 욕을 당했으며
또 고아들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이 병자호란입니다.
민간인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고 수십만 명이
포로로 잡혀간 치욕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전쟁이 병자호란입니다.
국민이 없는 지도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지도자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백성을 섬기게 해 달라는
와싱턴의 기도가 새삼 생각납니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작가 김훈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치욕을 기억하라(memento infamia).’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삶은 곧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며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역사가 삶과 죽음의 기록이라고 할 때,
치욕의 역사는 살아 낸 삶의 이력이며,
그 치욕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소설 남한산성의 키워드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득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주여, 첫째,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옵소서.
둘째,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셋째,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오랜만에 만나는 정말로 좋은 책입니다.
충무공의 삶을 담은 ’칼의 노래’,
가야 악사 우륵의 이야기 ’현의 노래’에 이은 김훈의
세 번째 역사 장편소설인데, 앞 두 편이 충실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했다면 남한산성은 고증 외에 소설적 요소도
가미되었지요.
우리나라 책을 가장 안사는 30에서 40대 남자들이
무척 많이 산다고 하는데
한 번 사서 꼭 일독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