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산이 높고 능선에 불쑥불쑥 솟은 바위들의 위용에 비하면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다. 남쪽 능선은 출입이 금지되어있어 오르지 못 하지만 장군봉, 신성봉, 삼불봉, 관음봉, 연채봉으로 통하는 북쪽 능선의 산길은 잘 꾸며 놓은 정원처럼 아늑하고 시야가 탁 트여 멀리 까지 내려다 보이니 이곳 산길을 여러 번 다녀 본 나에게는 참 좋은 산책길이다.
계룡산에는 울긋불긋한 천을 내려뜨린 꽤 유명한 신방이 있는데 그 마당에 서면 귀동냥으로 들은 단순지식으로도 쉽게 명당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물골 큰집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깊은 산중에 좌청룡 우백호가 높다랗게 양편에 감싸고 있고 용궁이라고 부르는 냇물이 신집 앞으로 비껴 흐르는 모습이 그럴듯하다. 여기에 신어미의 신들린 눈빛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왠지 괜한 느낌이 사뭇 무겁다.
계룡산은 서쪽으로 닫히고 동쪽으로 열려있는 산세 때문인지 해가지면 어두워지는 정도가 빠르기도하고 심하기도 하다. 해가진다 싶으면 계곡은 곧 깜깜해지는데 그 정도가 아주 심해서 금방 한 발자국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하다. 신방 사방 벽에 색동저고리 치마가 수십 벌 걸려 울긋붉긋하고 그 가운데에는 하얀 산신이 모셔져 있고 붉은 촛불이 깜박이며 흔들리고 있다. 제단 앞에 소복 입은 보살의 기도하는 뒷모습이 보인다.
높은 능선에 둘러싸여 작게 뚫린 듯 올려다 보이는 하늘만 엷은 푸른빛이 남아있는데 계곡을 비추기는 역부족이고 방안의 촛불 빛도 방문을 나서질 못해 사위는 이불속처럼 캄캄하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눈길을 걷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어보지만 뒷덜미로 밀려오는 막연한 두려움의 한기가 서늘하다. 어두워진 계룡산 산속에 죽은이의 혼령들이 깜깜한 어둠속을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