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이트가 좀 조용한 듯해서 아주 짧은 수필 한 편 올립니다. 오늘(3월 8일) 받은 서울사대부고 동창회보(62호)에 <14회, 이진홍>으로 실린 것인데, 회기와 필자명이 잘 못 되어 미안하다는 편집자의 편지도 함께 받았습니다. 그냥 두면 유령(幽靈)의 글이 될 것 같아서 여기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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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값진 선물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 빨라진다고 한다. 10대, 20대 시절에는 시속 10km, 20km의 속도로 지루하고 느리게 가던 시간이 나이 먹음에 따라 차츰 빨라져서 50대에는 50km, 60대에는 60km가 되고, 7-80대에는 7-80km로 달려가서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60이 넘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시간은 붙잡아 매어 둘 수도 없고,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일 수도 없는데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가속도가 붙는 듯하다. 퇴직한 후 출퇴근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니 무엇보다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게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내다보면 하루가 넉넉했다. 그런데 저녁 잠자리에서 돌아보면 그 넉넉했던 시간이 어느새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간 물살처럼 흔적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 할 일도 나중에 하면 되고, 오늘 못하면 내일이 있으니까 하고 조금 느긋해 하면 어느 새 한 달, 한 해가 서산에 지는 해처럼 금방 사라지는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 채 삶을 퇴장하여 저승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 같다.
스티브 매퀸 주연의 영화 빠삐용이 생각난다. 절해 고도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주인공의 꿈속에서 염라대왕이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린다. 그는 세상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나 염라대왕은 엄숙하게 "너는 인생을 낭비했다."고 말한다. 그렇다. 인생을 낭비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유죄가 되는 것이리라. 인생의 낭비란 쉽게 말해서 시간의 낭비인데, 시간은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들기까지의 오늘의 내용이고 그 속에 내 삶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이미 가서 없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아 없으니 있는 것은 오늘뿐이 아닌가? 그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유영모 선생은 날마다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삶을 살면서 일기의 날짜를 전체 살아온 날 수로 기록하고, 하루 동안에 일생을 산다는 소위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를 주장한 게 아닌가? 많은 위인들이 <오늘>의 의미를 일깨우는 게 그런 뜻일 것이다.
어느 친구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고 공감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86400원을 입금해 주는 신기한 은행이 있다. 그 날이 지나면 쓰든 안 쓰든 잔액이 다 빠져나간다. 어제로 되돌릴 수도 없고 내일로 이월할 수도 없다. 오로지 오늘 현재의 잔액으로만 살아야 한다. 수수께끼 같은 이 잔액의 비밀은 바로 하루 24시간 즉 86400초의 시간이다. 신이 지상의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이 선물 앞에서 누구도 가진 게 없다고 불평할 수 없다. 매일 자기 앞으로 입금되는 86400초에 감사하며 멋진 하루를 창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다. 나에게 다른 때(시간)는 없다. 바로 오늘(지금)이야말로 나의 때이다. 나에게 다른 곳(장소)은 없다. 바로 여기야말로 내 삶의 장소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내 삶의 내용이고 의미일 수밖에 없다. 지금 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 햇살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 내가 앉아 있는 이 작은 방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나의 공간인가? 그리고 오늘도 86400초의 시간이 아무런 이자도 요구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게 주어져 있으니.... 이렇게 값진 선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2월 말 그대 시인을 만난 후 내일도 86,400초를 대구에서 보낼 운명...
이번에도 동기들 (고교 및 하늘사나이) 번개팅 가능 할까?
그러면 86,400초의 부가가치가 극대화 될 텐데... K-2 에서 낼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