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산행기(250회)
이 성 희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龍門山 (1157미터)은 가평군에 있는 화악산, 명지산 그리고 국망봉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옛 이름은 미지산으로 불렸는데 북한강과 남한강 두 갈래가 산을 에워싸고 흐르며 사방으로 뻗어내린 계곡이 웅장하고 골이 깊어 奇巖怪石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용문산에는 龍門寺 · 상원사 · 윤필사 · 舍那寺 등 고찰이 있다.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아들 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나라 안에서 제일 크고 가장 나이가 많으며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문사는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은 후 취운스님이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그 유명한 용문산전투 와중에 큰 피해를 입어 지금 남아 있는 건물들은 1958년 이후 지어진 것들이며, 정지국사의 부도와 비를 비롯한 몇 개의 부도와 석축들만이 옛 모습을 그대로 전할 뿐이다.
또한 용문산에서 이름난 것이 뱀과 산나물인데 이 산의 산나물을 시로 읊은 사람이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안국이다.
산나물 향기롭고 연하긴 용문이 그만인데
그것으로 손님 대접하면 후의(厚意) 있음을 알리라
방장(方丈)의 고량진미를 어찌 부러워하리오
한 바구니 속에 부귀영화도 저버리라 하였다
산나물 들어온 것이 있어 시를 지어 보내며 사례하였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 바람 한 점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여서 사람들도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아 습도 높은 공기가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그래도 스물 한명의 일행은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산을 향해 걷는다.
갑자기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간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관광용인가보다. 겨우 몇 백 미터를 마차를 타고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우스웠다. 草原을 달려야 딱 어울리는 잘 생긴 말이 아스팔트를 헐렁헐렁 걸어가는 모양새는 보기에도 딱하다.
절 입구에 조성해 놓은 도랑물길에는 사람들이 발을 적시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주변 공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절집 아래 은행나무 앞에서 모여 쉰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담장에 하트모양의 메모지가 잔뜩 걸려 있어 보기에 거추장스럽고 답답하다.
은행나무를 지나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모두 물가로 내려앉는다.
물은 어디에나 지천이지만 수량이 작년만 못해 소리가 많이 약해졌다. 그래도 이 물이 < 산삼이 썩은 물 >이라 보약이라는 < 터줏대감 >의 말씀에 차마 마시지는 못하고 발만 물에 담갔다. 투명한 수면 아래에서 물고기가 헤엄친다. 송사리인줄 알았더니 산천어란다. 물 속에는 하늘도 한 조각 떠 있고 무성한 나무도 보인다. 작은 돌을 집어 아이처럼 물수제비를 떠 본다. 잘 되지는 않고 파문만 생긴다. 숲과 하늘이 한꺼번에 일렁인다. 물바람이 서늘하다.
용문의 품이 아무리 깊고 넓어도 늘 아래쪽에만 앉았다 가는 까닭에 그 속내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연 전에 꼭 한 번 頂上에 서 보았는데 어느 새 먼 옛 일이 되어버렸다. 다시는 품을 수 없는 넓고도 깊은 가슴.
늘 가는 월남식당에는 때에 맞는 닭요리가 한상 그득히 차려져 있고 우리의 친구 정광이가 담근 약주가 올려져 있다. 벌써 몇 년 째 오는데 그 향기롭고 빛깔 고운 家釀酒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잔을 들어 건배한 뒤 덕담과 웃음과 농담이 어우러지니 잠시나마, 펄펄 끓는 바깥세상의 삼복더위를 잊어본다.
더구나 후식으로 가져온 수박이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는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술과 과일을 제공하고 호박과 토마토도 나눠주고...
송정섭 정정광 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늘 건강하기를.
정만호 송정섭 신해순 이상훈 황정환 정기봉 강기종 허창회 이명원 김영길 박효범 박상규 이종건(회장) 민일홍 이종건(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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