靈長山(孟山)에 다녀와서(135회 산행기)
어제 저녁처럼 장대비나 맞게 되면 어쩌나 조바심하며 이매역에 내렸다.
다행히 비는 그쳐가고 있고 3번 出口에는 무려(!) 스물 한명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자주 보는 친구들도 반갑고 오랜만에 온 친구들은 더 반가웠다.
10시 10분경 출발하여 몇 걸음 걸으니 바로 눈앞에 오늘의 목적지 靈長山 들머리가 보였다. 길이 좁고 빗물에 깊이 패여 고르지 못한 탓에 발밑을 조심하며 걸었다. 간혹 빗방울이 스쳐가곤 했지만 그 정도면 여름 산을 오르기에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오지 않았지만 우무일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올 여름은 유난히 길다. 팔월도 그믐이 가까운데 아직도 한낮은 불볕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 또한 어김없이 지나갈 터이니 참을만하다.
30여분 걸었는데 앞의 열두명(심항섭,김상건, 주환중, 박효범, 정기봉, 변병관, 송인식, 강기종, 권영직, 김진국, 김윤종, 이성희) 이외에 뒷 팀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연락을 해보니 길을 잘못 들어 다른 데로 가니까 따로 갈 터이니 나중에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모두 아홉 명이었다. (황정환, 박상규, 박미자, 박정애, 남영애, 이상례, 이향숙, 정영경, 유정숙 )
이 산에는 올 때마다 길이 어긋나 이산가족이 되곤 하니 이상한 일이다. 가벼운 산행이라고 방심한 탓은 아닐까.
무릎이 안 좋은 친구도 있고 해서 쉬엄쉬엄 걸었다. 한 번 삐끗하면 몇 달씩 고생을 해야 하므로 열 번 조심해서 나쁠 게 없을 것이다. 선두가 길을 잘못 들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기도 했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선두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세상은 속으면서 사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심회장의 묵직한 一聲에 모두 자라목이 되었다.
정오 무렵, 頂上에 도착했다. 해발 413m. 항상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 크든 작든 山은 자신만의 結氣를 품고 완강하게 버티는 부분이 있는 듯이 느껴졌다.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과일과 음료수로 갈증을 식히며 심심파적으로 제각각 산 이름풀이를 해보았다. 글쎄. 靈魂이 떠돌다 내려 앉아 오랫동안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해야 할른지. 돌아보니, 주변에 비안개가 자욱하여 묘지 쪽으로는 鬼氣마저 느껴져 가슴이 다 서늘해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정상에 서 있는 나무 중 상당수가 허리 아래를 비닐로 칭칭 감아놓았다. 마치 겨우살이 채비를 하는 것처럼. 웬일일까. 알고 보니 요즘 기승을 부리는 [참나무 시들음병]을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발밑엔 가을처럼 낙엽이 수북했다. 지급 한창 푸르러야 할 나무들이 해충 때문에 말라죽어가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더구나 경기도, 강원도, 충청지역까지 자꾸 번지고 있다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下山길로 접어든다. 내려오는 길엔 잘 생긴 나무들이 빽빽하고 의외로 간간히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은 물먹은 나뭇잎 사이에서
보석같이 반짝였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매미들의 합창이 그만 자지러진다.
길옆에는 샛노란 망버섯이 하나 외롭게 피어 있었다. 마치 꽃처럼. 年前에 북한산에
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처음에는 그것이 버섯인 줄 몰랐었다. 작은 버섯 한 송이가 주변을 온통 노란 색으로 물들일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색깔이 선명했다. 모두들 신기해 하며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멀리 아스팔트길이 보이는 곳에 있는, 예전에 이주일 별장이었던 곳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주인 잃은 집은 頹落하고 공사판 같이 어수선한데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소나무들만이 의연했다. 사람은 가고 나무만 남았다. 人生 無常이다.
율동공원에는 개울물이 불어 콸콸 소리내며 흐르고 키 큰 물가의 풀들은 얼마나 세차게 바람매를 맞았는지 모두들 길게 누워 있었다. 가까운 호수에 청둥오리 네 마리가 눈에 뜨였다. 아름다운 것은 수컷이고 칙칙한 것은 암놈일 것이다. 기러기와 청둥오리는 같은 기러기目에 오리科지만 서식지가 다르다. 기러기는 가을에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날아간다. 번식은 시베리아 등 추운 곳에서 하며 청둥오리는 북위 30도와 70도 사이의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 분포하고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 越冬하는 대표적인 사냥새이며 하늘에서는 V 자 모양을 이루고 날아간다.
석영이네 식당에 도착하니 벌써 모두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직행한 후속 팀(한동건, 정태영, 이후영, 강소화)까지 모두 25명, 불순한 날씨 치곤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새로 바꾼 식당의 메뉴가 총동원되었나보다.
땀흘린 후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에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다.
쉬임 없이 먹고 마시고 얘기하고.... 어느 새 오후 3시, 하나 둘씩 배낭을 챙겨 멨다. 참 이번엔 회비가 없었다. 沈회장이 모두 부담해서 감사했고 친구들을 대접하느라 애쓴 석영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양희은의 노래 가사로도 인용된 한계령 시인 정덕수의 [한계령에서1] 의 一部分을 여기에 적어본다.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마라
울지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아린 옛이야기로
눈물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中略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 온 바람
함성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2006년 8월 29일
파일 이름에 한글 (세종대왕이 백성을 어여삐여겨 맨든 국산 글짜) 글짜가
있을 것인 즉 국산 글짜 대신 영문 알파벳으로 파일 이름을 바꿀 것.
이상 예전에 마스타가 일러주어 전환에 성공한 경험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