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기 산악회와 달리 총 동문 산악회에서 기획하는 산행은 출발시간이 7시 30분이다.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모임에 늦지 않고 산행을 참가할 수 있다. 더욱이 산행을 위해 늘 서 너 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산행 후에는 밤늦은 시간에야 귀가할 수 있다. 그렇게 멀리 가는 산행이 절대로 쉽지만은 않지만 그 대신 늘 명산을 찾는 산행이 만족스럽기에 모든 어려움을 다 잊을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올해는 우리의 동기인 김윤종 회장이 장기적인 안목과 열정을 가지고 총 동문 산악회의 운영하여 조직의 획기적인 개선과 불수도북 4개산 종주와 같은 새로운 행사를 주관하여 선후배들의 칭송은 물론 여러 일간지와 잡지 등에 기사화도 되고 있는 듯하다. 어제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 있는 민주지산(1242m)을 다녀왔다.
5시간의 산행 길 대부분이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정상을 향해 올랐는데 정상을 저 만치 두고 다시 한없이 다시 내려가는 안타까움도 몇 번 되풀이 된다. 산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 비슷한 생각을 하며 묵묵히 걷다보니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 삼국지 같은 소설이나 전쟁 영화를 볼 때 이름 없이 죽는 사람들 때문에 가슴 아픈 적이 있다. 멋진 무공의 주인공보다는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다 스크린 구석에서 쓰러지는 무명병사의 죽음이 더 인상적이었다. 잉카의 신전이나 만리장성의 여행길에서 이곳에 끌려와 한평생 노역에 동원되고 의미 없이 죽어간 생명들의 고통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어제는 물론 오늘도 운 나쁜 사람들은 한 구석에서 의미없이 죽어간다.
서부 영화를 본 기억 때문이겠지만 수년 전 석규네 집이 있는 말리브에 갔을 때 나는 바다가 보이는 그 언덕위에서 총상을 입고 몸부림치다 핏빛 눈을 부릅뜨고 죽음을 맞는 서부 시절의 인디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때 총상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예수교에서는 아니지만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나는 20여 년 전 서산 앞바다에서 한 마리의 우럭을 낚시 줄에 엮어 올렸고 그 우럭은 내 눈 앞에서 팔딱거리다 곧 숨을 거두었다. 나는 그런 살생의 추억이 있다.
종교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따라 삶과 죽음 사이를 흘러가는 내 삶이 가슴 떨리도록 소중하게 생각된다. 生老病死의 과정을 이어가는 한 생명체인 나에게 이제 남아있는 세월만이 진실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아직도 이렇게 어려운 산길을 걸어 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정상에 선다. 사방이 확 트인 산꼭대기에는 오늘 따라 시원한 바람이 지나간다. 이 산 북쪽으로 내려가는 길인 쪽새골은 유명한 관광지인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골골이 물이 흐르고 합쳐지면서 폭포와 담소를 이루고 수목이 울창하여 심심유곡을 이룬다.
<이 글을 중국에 있는 이상훈 마스터에게 보넨다. ㅎㅎㅎ>
"인생이 그러려니" 하고 無心히 다시 오르면 어느덧 頂上. 그리고 느끼는 행복감.
이때문에 산을 항상 가까히 하는 평주선생. 영원히 행복해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표준.
모두 배울 바가 많으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