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인산행을 포기한 후 두 달 만의 산행이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부지런을 떨며 대공원 역에 도착하니 이성희가 눈에 띈다. 9시 50분. 여학생 중에선 제일 선착인데 8월이면 새 직장을 따라 중국으로 가는 이상훈과 정태영 권영직 이명원 송인식 김진국 장용웅 그리고 갑자기 10년은 젊어 보이는 김용호(비결은 각자 조용히 물어보시길...) 등이 맞아준다. 아 참, 우무일도 있었지. 우무일이 미리 와서 물 폭탄을 예방하고 있었는지 날씨는 적당히 구름이 오락가락, 선선한 바람이 불고 기온은 최고 28도라니 안성맞춤이다.

 매년 여름이면 가던 대공원 산림욕장이지만, 경로 코스라서 서울 장안의 노인은 다 모인 듯 노인 들이 가득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들도 우릴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조금 있으니 분당 팀 강기종 김두경 이석영 심항섭이 몰려오고, 박정애 박상규 兩 朴이 나타난다. 이어 줄줄이 류진희 민병훈 정기봉, 이명원, 박효범, 민일홍, 김상건, 김성광, 서성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김성광은 덩치에 비해  작은 배낭이 바위에 붙은 매미 같이 가벼운 차림이고 송인식은 매미가 아예 붙지도 않았고, 민병훈도 벨트색을 두르고,  대부분 가벼운 나들이 차림이다. 그런데 심항섭이 애타게 이재상을 찾는다. 대공원 입장료가 무려 2,500원. 무료로 입장하는 비밀 통로를 재상이가 알고 있다나. 드디어 늦게 나타난 이재상. 이리하여 모인 얼굴은 모두 26명. 조선시대 마지막 재상이 그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대공원 우측 길을 따라 과천 매봉 방향으로, 며칠 전 비에 먼지가 말끔히 씻겨 푸르름을 자랑하는 가로수 사이 길로 호젓하게 걷는다. 역 앞에서 만난 객들은 모두 대공원으로 입장했는지 이 길은 16회 독차지다.

아직 젖은 길이라 먼지도 일지 않고 습도가 높으니 땀은 많이 난다. 약수터를 지나서 조금 가다가 비밀 통로를 드디어 발견. 여기부터는 대공원 산림욕장 길이다. 한 고개 넘어가 쉼터에서 장을 펴고 살림꾼 박정애와 장용웅이 거한 상을 차린다. 정애는 김밥, 오이, 문어, 오렌지, 자두, 수박, 냉커피까지 많이도 준비해왔다. 장용웅도 질세라 매일 새벽에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토마토와 당근을 꺼낸다.

그때 문득 주환중과 이영식이 깜짝쇼를 하듯 등장. 먹거리가 파장 무렵 정애 상규 양 박이 작별 인사를 한다. 필리핀의 이관수 딸이 오늘 오후 3시에 피아노 독주회가 있어서 28명 대표로 가겠다고. 우리도 마음은 그리로 보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주초에 내린 비로 간간히 졸졸 흐르는 오아시스 같은 실개천을 보며 피톤치드 향이 코를 자극하는 숲 길을 따라간다.

민병훈이 심심한지 5060시대로 타임머신을 타더니 퀴즈를 낸다. 
"세종문화회관  이름이 전엔 뭐였지? "
"시민회관이었지." ( 내 대답)
"시민회관 전에 이승만 대통령 호를 따서 우남회관이고  그 후에 시민회관 ,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이네."
다시 또 질문.
"시공관은 어디였게? " 
"단성사였던 것 같은데." (내 대답)
"틀렸어. 명동 예전 국립극장이 처음엔 시공관이었고, 그 다음이 국립극장이었어." 
"그런가?" 
"그리고 동대문 운동장 이름이 전엔 뭐였는지 알아?"
"동대문 야구장." (박효범 대답)
"틀렸다. 서울운동장이었다." 
S의대 출신 수재 답게 별걸 다 기억하네. 아무튼 공부시켜줘서 고마워. 

 옆에 가는 L 동문이 내가 맡은 선우회가 앞으로는 등산회 다음으로 16회에서 인기있는 소모임이 될 거라며 아첨성 발언을 하는데 아첨인 줄 알지만 듣기는 싫지 않다.

둘째 샛길을 지나 셋째 샛길 입구에서 몇 명은 하산을 하겠다고 내려가고 김진국 송인식 이영식 이명원 김성광 류진희 이석영, 박효범, 나는 계속 가기로 한다. 높낮이가 거의 없이 평탄한 능선이니 힘이 그리 들지는 않으나 총 6.3Km의 긴 길이라 지루하다고 느끼기 쉬운 코스다. 강기종 이재상 이성희 정태영 정기봉 김상건 장용웅 등은 선두로 종주에 나섰는데 버얼써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빠르기도 하지.

  가면서 김진국과 불면증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동문들이 가끔은 불면증을 겪는가보다. 김진국은 “의사의 처방으로 자기에게 맞는 수면제를 먹되 가장 좋은 치료는 등산 등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라고 결론 내린다.

운동도 하고 상담도 하고, 그래서 동기 산악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석이조의 좋은 모임이다.

셋째 샛길이 끝나고 마지막 코스로 가는 곳에서 우리 팀은 하산을 결정했다. 이 나이에 무리할 이유가 없다나. 샛길로 내려오는데 물 폭탄에 떨어진 자두가 우수수 떨어져 밟힌다.

즐비한 자두를 아깝게 바라보며 내려오니 동물원이 나타난다. 붉은 사슴, 꽃사슴, 사슴, 등 사슴 종류의 우리와 기린. 물소, 코뿔소 우리를 지나니 눈요기로 지루한 줄 모르겠다.

뒷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당당히 나온 우리는 오늘 7만원 벌었다. 7만원이 어디냐. 소말리아 어린이 70명의 한 달 생활비라는데... 우리 팀은 우리가 선두인줄 착각하고 이미 서성수네 식당에 간 몇 명을 기다리며 잠시 문 앞에서 서성였다. 마침 쨍하고 밝은 햇빛이 쏟아져서 기다림을 포기하고 코끼리 열차에 오른다. 순식간에 주차장 앞에 도착하여 맘 좋은 아저씨 박효범이 아이스크림을 쏘려한다. 이영식이 펄쩍 뛰면서 하는 말, “야, 수제 아이스크림 사지마. 먹다 죽으면 보상금 받는 브라보 콘을 사.”

우리는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기업형 제품을 택해 , 박효범은 결국 편의점에서 브라보 콘을 쏘고, 잠시 그것들을 다 먹은 후 천천히 미루나무 그늘로 갔다.

가보니 우리 팀이 제일 꼴찌. 이승희도 와서 손을 흔든다. 오늘 참가자는 29명을 돌파한다. 얼마 전에 두 번째로 쓰러졌던 정기봉이 건강을 완전 회복했는지 종주를 일찌감치 마치고 앉아있어서 감동을 준다. 이재상이 “ 네 다리는....”하자 정기봉은 “ 백만불짜리지.” 한다. 오뚜기처럼 일어난 오늘의 스타 정기봉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화이팅!!!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마이크가 필요없는 큰소리의 주인공 이재상이 일어나더니 어나운스를 하겠단다.  8월 6일,  올해 회갑을 맞는 개떼 (개 띠들)을 위해 매일회 주최로 강남 대모산으로 등산을 한 후  수서에서 한턱 쏠테니 많이 참석해달라는 안내 방송이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미루나무 그늘을 전세내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생태탕과 가자미회무침으로 포식한 후 공치기파(당구파), 주당파, 집으로 파, 우왕좌왕 파로 나뉘어 해산. 오늘도 엔돌핀이 팍팍 솟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