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어제 근교의 복사꽃마을 구경을 했습니다. 환한 봄날, 분홍색 파스텔로 칠해 놓은 들판과 산기슭의 화사한 복사꽃을 보니, 서정주 시인의 [봄]이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복사꽃 퓌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맞춤법이 다소 틀림)>
그리고, 분홍빛 복사꽃 마을을 지나보니, 이 시인이 <桃花桃花>라는 작품에서 복사꽃의 이미지를 매우 관능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시와 함께]의 연재 순서에 따라서, 계절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외수의 <연꽃>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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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이외수(1946-), [연꽃]
연꽃은 더러운 진흙탕에서 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깨끗한지요? 진흙탕 속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고, 온화한 모습으로 귀한 품격을 지키며 주변의 악취를 향기로 바꾸어 주는 아름다운 꽃, 그래서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비유와 상징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을 욕하고 불평하지요. 우리가 때묻고 더럽혀지는 것은 세상이 더럽기 때문이라며 세상을 탓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연꽃을 가리키며 우리들을 비판합니다.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저 연꽃은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도 마치 등불처럼 환하게 <대낮에도 밝아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 짧은 시구가 마치 죽비소리처럼 가슴을 후려치네요. 이 시를 읽고 진흙탕에 핀 연꽃을 보니 지금까지 세상을 욕했던 게 부끄럽습니다.
이 진 흥 - 매일신문, 200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