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산행 긴 얘기 (130회)
집합시간이 일러 어떨까 생각했는데 모두들 시간을 잘 지켜 8시 15분에 출발했다. 참석인원 30명.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아직 철이 일러 겨울의 끝자락을 벗어나지 못한 山野지만 그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려는 맹렬한 생명력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요즈음 날씨가 건조한 탓에 입산금지 구역이 많아 산행선정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沈회장의 순발력으로 음성군당국으로부터 당일 오전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입산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길이 막히지 않아 10시 경에 梧甲山 입구에 다다랐다.
먼 입구에서 가까운 입구까지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워밍업을 하자니 쾌청한 날씨 덕에 곧장 등언저리가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는 복숭아밭이 줄지어 늘어섰는데 머리에 수건 쓴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오래 된 나무들은 허리에 받침대를 받치고 서있는데 사람이나 매한가지로 늙으면 허리병이 생기기도 하나보다. 복사꽃이 피면 얼마나 고울까는 오래 상상하지 않아도 금방 떠오른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단골소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분홍의 융단이 깔린 것 같지 않을까.
좁은 길로 들어서니 이내 흙길이 나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지나간 시절의 殘葉과 새로 뾰족이 올라오는 풀들이 한데 어우러져 엄마품처럼 푹신하다.
[발밑에 가여운 꽃 밟지 마라]라고 노래한 詩人의 말이 아니더라도 작고 가여운 풀꽃들이 어둑한 눈을 비비고 들여다보아야 할 만큼 작게, 여리게 그러나 곱게 피어 있어 가끔은 발걸음을 옮기기가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이름 없는 무덤들이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구릉에는 할미꽃도 몇 송이 피어 있어 반가웠다. 할미꽃은 왜 무덤가에 잘 피어나는지. 막내딸을 찾아오다 지친 할머니의 혼백인가, 무릎을 꿇고 앉아 겸손하게 고개 숙인 꽃망울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솜털보시시한 보랏빛 꽃 색깔이 아름답다.
지난주에 비해 한결 따스해지고 청명한 날씨여서 이내 땀이 나기 시작하므로 그 지점에서 모두 겉옷을 벗는다. 하늘이 이렇게 맑을 수가. 날이 가물어 먼지가 많이 일어나는 게 좀 험이긴 하지만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코스다.
중간에서 A조와 B조로 나뉜다. A조는 23명, B조는 7명(황정환, 이재상, 김용호, 김수관, 한동건, 남영애, 박미자)이다. 정상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처음 편안했던 것과는 달리 후반에는 조금 가팔라서 다 왔나 하고 서너 번 속은 뒤에야 맨 위 땅을 밟았다. 해발 609.4m 梧甲山 이진봉 頂上이다. 단발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다가 종국에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곤 했다.
봄은 황사로 因해서 시야가 흐려지고 먼지가 나는 후텁지근한 공기 따위로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유난히 하늘이 淸淸하고, 일렬로 늘어선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낡은 잎새들을 흔들며 사라지는 바람조차도 눈앞에 서늘하다.
그리고 특별히 허가 받아 산에 오른 덕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서 마치 전세 낸 것처럼 우리들의 말과 웃음소리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신선하다.
[梧甲山 정상에서의 조망은 멀리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가 꿈틀거리고 국망산과 질마루 고개와 보련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한 청미천이 발아래 흐르고 원부 저수지가 햇빛에 반짝인다. 북쪽으로는 마골산과 도림골산이 희미하나마 보인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억새밭인 민등봉이다. (이 대목은 인터넷에서 찾았슴)]
조금 아래 둥글게 펼쳐 있는 넓은 마당에 둘러 앉아 각각의 음식을 펼쳐 놓고 頂上酒를 하면서 B조를 기다리는데 얼마 후 삼형제봉을 지나 정상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음식이 바닥날 때까지도 도착하지 않아 우리는 내려가면서 합류하기로 했다. 능선을 따라 10여 분 걸어가다 보니 그 곳에 B조가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정상이 두 군데였던 것. 그곳은 壬辰亂 때 陣地가 있었던 곳이라서 壬辰峰이라고 하는데 높이도 두 정상이 똑 같았다.
B조(그들은 자신들을 7인의 독수리라 불러달라고 했다)들은 도대체 무엇이 B조라는 것이냐고 불평이 대단했다. 완전히 유격훈련을 했다는데 할 것은 죽어라고 다 했으면서 B조라는 불명예(?)는 뒤집어썼다고 아우성이었다. 잠시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느라고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에 배는 고프지만 되돌아 내려올 수밖에 없으니 미안하기도 했다. 독수리들이 올라온 길을 함께 내려오면서 살펴보니 A조보다 경사가 조금 완만하고 거리만 조금 가까운 것이 힘이 들었을 것을 짐작하게 했다. 편안하게 생각했다가 일격을 맞은 격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같이 행동했어도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을.
A조는 먼저 내려와 아산에서 올라온 이호설동문과 반갑게 만나고, 버스에 올라 독수리들의 뒷풀이 시간을 기다려준 아량(?)도 베풀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간판글씨가 근사한 [외할머니 식당]에 도착했는데 화장실을 찾다가 보니 바로 왼쪽에 이상한 표시판이 눈에 띈다. 화투의 똥광(미안!)을 큼직하게 확대하고 그 그림을 배경으로 [해우소]라는 흰 글씨를 써 넣은 것이 말하자면 화장실안내 표시판이었으니 그 주인의 해학에 배꼽을 잡았다.
식당 안에는 예사롭지 않은 글씨와 그림이 붙어 있어 평범한 청국장찌개가 맛이 한결 깊은 것처럼 느껴졌다. 7인의 독수리들은 얼마나 시장했던지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외할머니에게서 풍기는 품격도 멋있었는데 식당 바로 옆에는 작은 박물관(陰城博物館)있어 들어가 보니 식당 주인 할머니의 조카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작품이 들어차 있었고 나름대로 數億원의 私財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뜻밖에 좋은 글씨를 그런 곳에서 볼 수 있어서 놀랐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는 館長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일정을 서두른 탓에 비교적 이른 시간인 4시 조금 지나 서울에 도착했는데 해가 中天이라 귀가하기가 아쉬운 일행 중 일부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사정상 뒷풀이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뒷얘기는 desk에 부탁합니다.)
참석인원 (남자) 김두경 심항섭 황정환 정태영 김성수 김수관 송인식 우무일 김상건 권영직 김진국 조병희 위광우 한동건 정만호 이상훈 이재상 김용호 변병관 신해순 민일홍 박효범 현지 합류 이호설 (여자) 이석영 박미자 박정애 진영애 정숙자 정영경 이성희 남영애
B팀은 그야말로 비팀이 돼었읍니다, 초장은 완만한듯 하다가 순식간에 길을 잃더니만 관목 덤불 숲과 낙엽 함정에 물없는 계곡을 수회 넘나들고,,,7인의 독수리가 황야의 7인으로 됐었지요.
그런중 2군 감독인 황정환 얼마나 노심에 초사에 결국은 길을 찾았는데 코스는 얼마나 완만 한지 아이가 북벽 보다는 한결 수월 하드만요.
그걸 꾸준히 해내고 재기에 성공한 수관과 그리고 황감독에 경의를 표합니다.
심회장이 주관한 산행으로선 제일 먼 산행에 깔끔한 진행으로 시간 저축이 쏠쏠하여 뒷풀이를 안할수 없는 분위기 였죠. 그래서 진부한 노래 보다 상큼한 입가심이낫다 하여 수서의 HOP로 과반수 이상이 몰려 갔었죠.
그래도 양이 않찬 사람들은 한동건 동기 회장의 향도로 선능에서 또 한잔, 그래도 초저녁이네요. 두루 수고들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