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연재했던 글을 순서대로 하나씩 옮기다 보니, 이 시는 계절에 맞지 않아 좀 어색합니다. 봄 햇살이 환하게 밀려와서 나뭇가지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고 꽃눈이 터지려고 하는데, 떨어지는 나뭇잎의 이미지라니 생뚱맞은 느낌이 들지요? 그러나 좋은 시는 계절에 관계없이 감동적이라고 하니 한 번 감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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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이성선(1941-2001), [미시령 노을]
미시령을 아시는지요? 그 높은 고갯길을 넘어 보셨는지요? 그곳에서 하늘에 붉게 번지는 노을 빛을 보신 적이 있는지요? 시인은 노을에 물든 그 고갯길에 혼자 서 있습니다. 사방이 조용한데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시인은 어깨에 툭 내려앉는 나뭇잎 하나에서 전 우주를 느낍니다. 나뭇잎은 바로 우주의 손, 그러니까 우주가 손을 시인의 어깨에 얹은 것입니다. 거대한 우주가 손을 얹었는데, 그 손이 나뭇잎이니 너무 가볍습니다. 지금 시인이 바라보는 노을은 빛과 어둠 혹은 생성과 소멸이 화해하는 감격의 빛깔입니다. 세속의 욕망이 닿지 않는 미시령의 노을 아래에서 우주와 교감하는 시인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진 흥 - 매일신문, 2005/8/23